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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
[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12)제주 원담
바다밭 돌담서 한 철 끼니를 얻다
입력 : 2007. 05.04. 00:00:00
모습 드러낸 원담

모습 드러낸 원담

▲돌다리 처럼 쌓아 올린 대정읍 동일1리의 비린대원 안원담이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 해안가에서는 동일리처럼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는 것외에 인공적으로 돌담을 축조해 원담을 만들고 고기를 잡았다. /사진=강희만기자 hmkang@hallailbo.co.kr

인공적으로 쌓아 만든 돌그물 많아

밀물 때 밀려든 고기 썰물에 갇혀

마을공동 소유로 멸치잡이 대표적


 제주섬에선 음력 3월 보름이 되면 이런 말이 돌았다. "남의 질 도둑질 할 새가 없다." 이때쯤엔 바닷물이 뒷걸음질치듯 화르르 빠져나가 온갖 해산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풍경을 밟으며 너나없이 바다로 달려나가 먹을 거리를 구했다. 남의 집을 기웃거릴 틈이 없었다.

 땅에서 밭을 일구듯, 바다밭에서 또다른 생을 이어갔던 제주사람들. 원담으로 불리는 돌그물이 그 바다에 있다. 바다가 육지쪽으로 밀려든 생김새를 한 곳에는 대개 원이 자리했다. 원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돌로 쌓은 바다의 돌담이다. 갯가를 돌로 둘러막으면 밀물에 몰려든 고기 떼들이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해 그 안에 갇힌다. 그렇게 해서 어렵지 않게 고기를 잡는다. 돌로 만든 그물인 셈이다. 원담안에 갇힌 어류를 잡는 어업방식은 오래됐다.

 원이란 이름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불린다. 원(담), 통, 개, 갯담 등 다양하다. 또한 지역의 원담들은 그 안에서 잡히는 물고기, 지명, 생김새, 원담을 주도적으로 쌓은 사람에 따라 저마다 이름이 붙여진다. 고광민씨(제주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에서 원은 울타리를 뜻하는 원(垣)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이같은 돌그물은 제주에만 있는 게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 규슈, 오키나와에서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돌만이 아니라 대나무, 갈대 등을 쓰기도 한다.

 돌이 많은 섬 제주에선 돌을 쓰는 게 당연하다. 바다의 지형에 의지해 자연적으로 원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만든 원담이 여럿 있다.

 대정읍 동일1리의 비린대원. 문장백씨(58)는 이 마을에 본래 다섯개의 원담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린대원이 유일하다시피 남아있다고 말했다. 비린대원은 안원담, 밖원담 이중으로 되어 있다. 밖원담은 하나둘 허물어지는 걸 그저 두고보는 처지이나, 안원담은 마을 청년들이 보수하며 그 형태가 유지됐다. 너비 2m 60㎝, 길이 1백50m, 높이가 1m65㎝~2m 30㎝에 이른다.

 원담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서다.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높이 1m 20㎝의 야트막한 섯골원담은 김행오씨(61) 등 해안가에 사는 50~60대 주민 서너명이 보수를 맡고 있다. 지난 4월에도 썰물때에 맞춰 무너진 원담을 쌓아올렸다. 안쪽은 높다랗게, 바깥쪽은 그것보다 얕게 비스듬히 돌을 쌓아 바다에 잠긴 돌담이 거친 파도에 쉬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하귀1리 관전동 앞바다의 듬북개는 원담에서 고기잡이를 즐겨하는 마을 주민 몇몇이 보수를 하고 있다. 이 마을 고태수씨(57)는 "3년에 한번꼴로 멸치, 문어, 독가시치, 오징어 같은 게 밀려들어 원에 갇힌다"고 했다. 문화유산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지 짐작하게 만든다.

 제주의 원담은 마을 공동 소유로 지켜졌다. 멜(멸치)이 들면 마을 사람들이 한데 나와 잡았고, 원담을 쌓고 보수하는 일도 공동 작업으로 진행됐다. 전승오씨(61·애월리)는 "겨울철 파도에 허물어진 원담을 정기적으로 보수하고 나면 풍어를 기원하면서 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담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즈막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애월리 김행오씨는 "원담을 보수하는 사람들은 정해져있지만 그걸 몇몇 사람의 소유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원에서 고길 많이 잡으면 그걸 적게 잡은 사람에게 나눠줬듯이 그렇게 사는 거다"라고 했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멜 잡던 사람들 다 어디로"

대정읍 동일1리 비린대원, 한때 道문화재 지정 추진


▲대정읍 동일1리 강영생 할아버지가 이즈막에도 원담에서 즐겨 사용하는 '족바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멸치떼가 들어오는 물때에는 정신이 없었다. 새벽에라도 누군가 "멜(멸치) 들었져"라고 외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원담으로 나왔다."

 대정읍 동일1리 문공일(71) 노인회장은 원담에서 행해졌던 멸치잡이 풍경을 전해줬다. 멸치떼가 몰려드는 날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손에 '쪽바지'(사둘· 손잡이가 길고 국자처럼 생긴 고기잡이 그물)나 '구덕'(대나무로 짠 바구니) 등을 들고 바다로 뛰어나갔다.

 동일리는 소금밭으로 유명했던 곳. 지금은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소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빌레들이 흔했다. 원담에서 잡은 멸치들이 이 소금과 만났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날외 소금'으로 젓갈을 담그고, 살짝 간을 해 구워먹기도 했다. 중산간 마을에 가서 팔기도 하고, 이웃에 나눠주기도 했다. 봄철에 잡히던 어른 손가락만한 멸치는 고급 반찬거리였다.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어떤 날은 멸치를 보리밭에 비료로 뿌렸다.

 문공일 노인회장은 원담 멸치잡이의 역사가 1백50년은 되었을거라면서 "마을사람들의 주요 소득원이던 멸치잡이에 주민의 애환이 녹아있었다. 지금은 원담만 남아 그 시절을 말해주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만이 아니라 동일1리 사람들은 원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예전처럼 고기가 풍부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비린대원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강영생씨(80)처럼 족바지를 늘 손질하며 해안가로 갈 채비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마을에선 비린대원을 제주도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이장을 맡았던 문장백씨는 "원담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다 어장이 비교적 풍부해서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 원담을 문화재로 지정하면 동일1리가 도민이나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마을 수익에 도움이 될 것 같아 4년전쯤 지정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안가 인근에 땅을 소유한 사람들의 반대로 뜻을 접었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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