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테우는 연근해 고기잡이용이기도 했지만 밭의 거름으로 사용했던 해초류를 채취하기 위한 용도로 많이 쓰였다. 사진은 연중 테우타기 체험행사를 벌이고 있는 서귀포시 하효동 쇠소깍의 풍경이다.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섬에 많던 테우 화산섬 토양과 연관 거름 이용위해 해초류 채취가 다반사 부력 좋은 구상나무 테우 재료로 이용 지난 19일, 서귀포시 효돈동연합청년회 회원 열댓명은 안덕면 동광리 야산으로 향했다. 삼나무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나무에 물이 오른다는 3월초쯤 삼나무를 베어내야 껍질을 벗겨내기 쉬운데 올해는 일정이 한참 늦춰졌다. 적당한 나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이날 청년회원들은 지름이 30㎝에 이르는 삼나무 14개를 구했다. 제주말로 쑥대낭으로 부르는 삼나무는 다름아닌 테우의 재료다. 7월 28~29일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쇠소깍 환경사랑 축제'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전까지 테우 제작을 마쳐야 한다. 순전히 청년회원들의 힘으로 테우가 만들어지는데, 5년전 축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한달 걸려서 1대를 완성했다. 제작법을 전수받을 데가 없어서다. 몇년간 경험이 쌓이면서 최근엔 1주일 정도면 테우를 만든다. 제주형 뗏목인 테우는 지역에 따라 테우, 터우, 테위, 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한 시인이 테우를 이용해 고대 뱃길 탐험에 나선 적이 있고, 보목동 이호동 쇠소깍 산지천 등에서 테우 체험 행사를 벌이면서 이즈막엔 제법 친숙한 이름이 됐다. 테우하면 자리돔잡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테우 쓰임새의 반쪽에 불과했다. 긴 막대에 호미가 달린 도구를 들고 나가 바다풀을 채취하는 일에도 많이 쓰였다. 10여년간 테우를 쓴 적이 있다는 서귀포시 하효동 이정현씨(85)는 "몰망이라고 부르는 해초를 따내기 위해 테우가 필요했다. 바다에서 따온 몰망을 고구마밭이나 보리, 조 농사를 짓는 밭에 뿌렸다. 테우로 자리돔을 잡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고 했다. 서귀포시 보목동 양성흡씨(79)는 "그물로 자리를 뜨고 고기를 낚기도 했지만 몰망을 채취할 때도 많았다. 몰망을 따낸 뒤에 널어서 말렸다가 고구마 심을 때 비료삼아 밭고랑에 깔았다"고 했다. 고광민 제주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제주도에 테우가 많았던 것은 섬의 토양조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제주도의 토양은 액체 거름을 밭에 드리우면 땅거죽에 머물러 있지 못해 고체거름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 연근해 거름용 해조류가 거름으로 한 몫을 했다. 때문에 제주도는 테우가 많은 섬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테우의 등장은 제주섬 농경의 시작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바다로 향하는 길목인 포구가 있던 어촌에는 어디든 테우가 있었다. 1937년 '제주도세요람'에 나온 어선분포도를 보면 테우를 일컫는 벌주(筏舟)가 4백86척, 일본배나 조선배가 6백93척, 동력선이 42척으로 나타난다. 테우가 긴요하게 쓰인 걸 알 수 있다. 지금은 삼나무로 테우를 만들지만 오랫동안 한라산 구상나무를 재료로 썼다. 구상나무는 비교적 가벼운데다 부력이 좋았다. 이정현씨는 구상나무를 구하러 직접 한라산 중턱을 올랐던 경험을 들려줬다. "새벽에 집을 나선 후 3~4시간 걸어서 한라산 중허리까지 갔다. 10여명의 장정이 몰려가서 12개 통나무를 베었는데, 그 나무를 마을까지 운반하는 데 하루종일 걸렸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마냥 베어다쓸 수 없었다. 자원이 한정된 데다 벌목을 금했다. 제주시 이호동 이보연씨(78)는 "구상나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일본에서 삼나무를 사다가 테우를 만들었다. 일본 삼나무는 물에 잘 뜬다. 나무 값은 비쌌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료가 나오면서 바다밭에서 거름을 구할 필요가 없어지고, 더 빠르고 견고한 고기잡이 배들이 등장하면서 테우를 새로 만드는 집이 없어졌다. 오래된 테우는 연료 따위로 사라졌다. 이즈막의 테우는 민속 공연이나 축제의 소품으로 곧잘 등장한다. 제주 쑥대낭을 재료로 쓴다. 나무토막으로 통나무를 잇던 옛 방식과 달리 오래가는 스테인레스 봉을 사용한다. 부력을 높이기 위해 바닥에 물에 뜨는 통을 매단다. 한 해 농사를 염려하고, 끼니를 걱정하면서 가까운 바다까지 온 몸을 이용해 노를 저어갔던 시절과 달리 '색다른 낭만'을 즐기기 위해 테우에 몸을 싣고 있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테우 만드는 제주시 현사마을 이보연씨 "해체.조립했던 테우 보며 제작과정 익혀" 제주시 이호동 현사마을 이보연씨(78·사진)는 오랫동안 테우를 잊고 살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테우를 20년쯤 써오다가 버린 게 40여년전의 일이다. 몇해전 옛 사람들의 뱃놀이를 재현한 용연야범축제에 쓰일 테우를 만든 게 계기가 됐다. 그 일 이후 틈틈이 그에게 테우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일정한 두께의 삼나무를 재료로 쓰는 탓에 여러 곳에서 만들어진 테우의 크기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대개 길이 5m, 폭 2m에 이른다. 이씨는 통나무 10~12개를 이용한 테우를 본 적이 많다고 했다. 지금 만들어지는 테우는 '비수기'에 통째로 바다에서 건져올려 보관하지만 예전엔 달랐다. 봄에서 가을까지 어로 작업에 쓰고 난 뒤에는 통나무를 하나하나 떼어내서 말렸다. "통나무 12개쯤을 반듯하게 놓고 앞과 뒤에 각각 구멍을 뚫는다. 똑같은 위치에 뚫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그 사이로 나무토막을 끼워넣어서 고정시켜아 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나무가 깨질수도 있다." '장쇠'로 불리는 나무토막을 빼내면 해체가 수월해진다. 어로 기간이 다가와서 테우를 조립할 때는 새로운 장쇠를 만들어 끼워넣는다. 60년대만 해도 현사마을에 5대의 테우가 있었다고 한다. 서귀포에선 몰망(모자반)으로 부른다는 듬북 따위를 채취하는 데 쓰였고 자리돔, 갈치잡이에도 이용했다. "테우론 해안에서 1㎞쯤 떨어진 거리밖에 나가지 못했다. 아기걸음마 걷듯이 노를 저으면서 가는 데, 새벽에 나가 낮 12시쯤 돌아올 때가 많았다. 어떤 날은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그는 '미니 테우' 두 대를 만들었다. 한 소리꾼이 공연용 소품으로 제작을 맡겼다. 길이 2m, 폭 1m 안팎으로 바다위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규모지만 필요한 것은 다 갖췄다. 노를 젓거나 잠시 쉬는 공간인 상자리, 앞뒤에 각각 세워지는 멍에, 노 등을 설치했다. 마을주민 1명과 함께 제작했는데 1주일이 걸렸다. 언제 또 테우를 만들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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