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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세계자연유산/등재 주역은…]한반도 달군 범국민 서명운동
입력 : 2007. 06.28. 00:00:00

▲제주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맨위)을 비롯 정부관계자 뿐만 아니라 전국의 국민들이 서명운동에 스스로 동참해 IUCN측에 깊은 감명을 줬다. /사진=한라일보 DB

내외 도민·전국이 들썩… '감동의 드라마' 연출

전직 정상·총리도 동참 … 최종 등재에 영향력

IUCN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 감명"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은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아름다움과 독특한 가치를 가진 자연유산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국제적 위상이 한단계 높아지는 국가적 영광이다. 돌과 바람, 오름과 바다, 독특한 문화와 수려한 자연이 한 곳에 있는 곳. 바로 제주섬이다. 이 섬이 한반도 최초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2007년 6월 27일은 제주의 저력을 다시한번 만방에 떨친 날이며, 동시에 '천년 왕국'을 호령했던 탐라의 르네상스를 또다시 예고하는 서막이다.

 제주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기 까지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때로는 좌절하고 숱한 고난이 닥쳤지만 천혜의 보고인 제주섬을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 대대손손 유산으로 넘겨주려는 올곧은 신념과 지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심에 탐라의 주역들이 있었다. 압권은 한반도는 물론 지구상에도 유례가 없는 등재기원 범국민 서명운동이다. 이 운동은 한편의 '감동의 드라마'였다.

 가마솥 더위가 한창이던 2006년 8월 16일 '범국민 1백만 서명운동'이 출정식과 함께 닻이 올랐다.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내·외 도민을 모두 합쳐야 1백만명에 불과한 제주도이다. 어느 누구도 이 운동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선도해 온 한라일보도 이 때를 맞춰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인터넷 서명운동에 뛰어들었다.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코흘리개 고사리손에서부터 남녀노소, 국내·외 관광객, 해외동포, 금융·관광업계, 기업체, 새마을단체, 전국의 지자체, 의회, 한국기자협회 등에 이르기까지 연령, 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국이 서명운동으로 들썩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한명숙 당시 총리, 국회의장, 정부 장·차관, 심지어 드라마 촬영 스텝 등도 서명대열에 동참했다. 대학생들은 자전거를 이끌고 국토 대장정 캠페인에 나섰다. 김한욱 부지사는 미국에서 열린 여행업 총회에 참석해 외국인들의 서명부까지 받아왔다.

 식을줄 모르는 1백만 서명운동은 기간을 넘겨 10월말까지 계속됐다. 서명인도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백50여만명에 이르렀다. 제주도민들은 감동했으며 제주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내·외국인이 참여한 가운데 1백50만명을 훌쩍 넘긴 서명운동은 '제주화산섬, 용암동굴'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소망하는 매우 의욕적이고도 상징적인 발걸음이었다.

 동시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아름다운 제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준 쾌거였다.

 10월말 제주실사에 나선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관계자는 "범국민운동으로 전개된 서명운동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극찬하는 등 실사 기간 내내 서명운동이 화제가 됐다. IUCN은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한 제주 '등재권고' 리포트에서도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여준 탁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제주지역의 이슈가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우리나라도 세계자연유산을 보유하자는 범국민적인 열망과 그것을 올곧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기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27일 제주섬이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내외 도민과 온국민의 기원과 정성이 모아진 결과였다.

/오태현기자 thoh@hallailbo.co.kr

/백금탁기자 gtbaik@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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