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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투·개표 이모저모]제주민심 전하는 ‘소중한 발걸음’
입력 : 2007. 12.20. 00:00:00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일, 투표 종료와 함께 오후 6시 무렵부터 제주시지역에 대한 개표가 한라체육관에서 이뤄진 가운데 개표요원들이 투표용지를 정성스럽게 정리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노인·장애인 투표도우미 자청

○…제17대 대통령선거와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을 선출하는 동시선거가 19일 치러진 가운데 각 마을 청년회에서 노인유권자들을 투표장까지 수송해주는 미담사례가 잇따라.

제주시 우도면 청년연합회(회장 한성일) 청년회원 15명은 개인 차량을 이용해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유권자 2백12명을 투표장까지 수송.

서귀포시 중앙동에서는 '장애인 부축 도우미(자원봉사자)'를 사전에 확보해 투표소에서 투표를 희망하는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 제주시 오라동 정실마을 이모씨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 23명을 투표소까지 모시는 봉사활동을 전개.

섬주민 투표 위해 뭍나들이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 주민들도 19일 유람선과 도항선을 이용, 소중한 한표를 행사.

마라도에 주소를 둔 유권자 87명 가운데 본섬에 나와 있는 유권자를 제외한 30여명은 이날 대정읍 제8투표소인 대정읍사무소에서 투표를 하고 배편을 이용해 마라도로 귀가.

이주여성 "이제야 정말 한국인"

○…9개월 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의 진민지씨(23·본명 뜨린티 키에우린)도 이날 귀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남편과 함께 화북동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진씨는 "떨리고 긴장되지만 이제야 정말 한국인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

최고령 유권자 참여 못해 아쉬움

○…도내 최고령 남녀 유권자인 유아지 할머니(109·제주시 오라1동)와 김극배 할아버지(106·조천읍 조천리)의 투표참여 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선거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모두 투표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

유 할머니는 현재 제주시 오라1동 소재 노인복지시설인 인효원에 거주 중인데 시설 관계자는 "유 할머니는 지금 노환으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며 "이번 선거에는 투표권 행사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언.

도내 최고령 유권자의 투표불참 소식에 투표장에 나온 도민들도 두 어르신의 빠른 쾌유를 기원.

"자주 바뀌는 투표소 헷갈려"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소가 바뀐 줄 몰라 엉뚱한 장소를 찾아 헤매는 해프닝이 발생. 오전 9시쯤 제주시 연동 모 노인회관을 찾은 이모씨(35·제주시)는 투표소가 바뀐 것을 뒤늦게 알고 발길을 돌리기도.

이씨는 "당연히 지난 5·31 지방선거때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가 낭패를 봤다"며 "미리 투표소를 확인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왜 이렇게 선거때마다 투표소가 바뀌는지 모르겠다"고 가벼운 불만을 토로.

10년전 이어 상복입고 투표

○…지난 15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상중에 투표소를 찾는 인연(?)이 있어 관심.

서귀포시 서귀북초등학교에 마련된 서홍동 제1투표소를 찾은 김모씨(37·서귀포시)는 조부상 중에 상복 차림으로 투표에 참여.

김씨는 "지난 제15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복을 입고 투표에 참여했었다"며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중이지만 조문객이 찾기에 앞서 일찍 투표를 하러 왔다"고.

"투표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몸이 불편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투표를 하고 싶다며 선거관리위원회로 도움을 요청해 무사히 투표를 완료.

윤모씨(48·서귀포시 대포동)는 서귀포시 선관위에 "투표를 하고 싶은데 좀 데려다 줄 수 있느냐"며 도움을 요청. 서귀포시선관위는 모범운전자협회로 연락해 윤씨를 중문동 제2투표소인 대포노인회관으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고 결국 윤씨는 모범운전자협회의 도움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사히 소중한 한표를 행사.

분류기 오작동으로 개표원 진땀

○…제주시 지역 투표함이 속속 도착해 개표에 들어간 한라체육관에서는 투표지 분류기의 잦은 오작동으로 개표원들이 진땀.

6번 투표지 분류기 운영부에서는 투표용지가 처음부터 걸려 작업이 중단되는가 하면 다른 기 계에서도 오작동이 발생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협조요원 관계자는 "여분의 기계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정상 가동이 안된다면 현재 배치된 기계만으로 개표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

경찰, 투·개표소 치안 만전

○…제17대 대선 및 도교육감선거와 관련해 경찰이 '갑호 비상령'을 내리고 투·개표소 등의 선거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

제주지방경찰청은 이날 오전 6시부터 개표 종료시까지 가용경력을 100% 동원할 수 있도록 전 경찰관의 연가를 중지하고 112타격대·형사기동대차량 출동대기 상태에서 지구대와 파출소를 매시간 연계한 순찰을 실시한 데 이어 개표소 경비를 위해 총 4백52명의 경찰을 투입해 우발사태를 대비.

제주특별자치도 소방방재본부도 만에 하나 발생할 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119대원을 증원해 비상 근무를 실시.

권영길 후보 강정마을서 선전

○…해군기지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대천동 제1투표소 개표집계결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2백31표를 획득, 이명박 후보(2백90표) 정동영 후보(2백42표)를 바짝 추격하면서 3위를 기록해 관심.

/이현숙·강봄·표성준·홍미영·최태경기자

"90평생 첫 투표 설렘에 잠 설쳐" 교포 강인순옹 국적 취득후 귀중한 한표

90평생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는 마음에 밤잠까지 설치며 투표장을 찾은 이가 있어 화제다. 19일 오전 8시 제주시 중앙여자중학교 제3투표소를 찾은 강인순 할머니(91·사진)가 그 주인공.

투표장을 찾은 강 할머니는 난생 처음 해보는 투표라 그런지 모든 게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누구못지 않게 진지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투표소 직원의 안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강 할머니는 맘속으로 점찍어둔 후보의 이름에 누가 볼까 손까지 가리며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굳게 붙잡고 있던 투표용지가 투표함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강 할머니는 너무 빨리 끝나버린 투표가 못내 아쉬운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강 할머니는 오늘이 생애 첫 투표를 행사하는 특별한 날이다. 60여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교포로 살아오면서 오직 자식들과 일만 알았지, 투표권도 없었을 뿐더러 선거 같은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편치 않아 고향인 제주를 찾은 강 할머니는 재일교포의 삶을 접고 지난 8월 귀화를 신청,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강 할머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처음 투표를 한다는 설렘에 밤새 잠을 설쳤단다.

"투표를 너무 하고 싶어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했다"는 강 할머니. 강 할머니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처음으로 투표를 하고 싶어서 투표소 문이 열기도 전에 차안에서 대기하다가 열자마자 투표를 하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몸이 편치 않아 조카가 말리는 바람에 천천히 나왔다"며 미소를 지었다.

일본에서 지퍼 사업을 하며 굵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고스란히 삶의 흔적을 남겨놓은 강 할머니. 그 아름다운 손으로 직접 선택한 후보가 누굴지 사뭇 궁금하다.

/최태경 기자 tkchoi@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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