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대표가 제주화산토로 빚은 도자기를 살펴보며 아들 형진씨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도망' 온 제주서 제2의 도자기인생 피하려 애쓰던 아들도 함께 흙 빚어 모처럼 평화로 주변 마을에도 하얀 눈이 소복했다. 설경에 취할때쯤 '제주요 화산토 도자기문화박물관'이 눈 앞이다. 그곳엔 치열하고 엄격한 아버지 도예가 김영수대표(61)와 그의 곁에서 묵묵히 함께 일하는 젊은 도예가 형진씨(31)가 있었다. 검붉은 빛이 돋보이는 '제주흑자'와 다양한 도자기들을 비롯해 제주의 도자기 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는 전시공간, 도자기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볼수 있는 작업장이 갖춰져 있었다. 이곳은 김 대표가 10여년의 준비끝에 만들어낸 소중한 공간이다. 가난한 도공(陶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한살때부터 도자기 제조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도자기와 함께 살아온 것. 너무 일찍 시작해서였을까? 그는 35년전 도자기 작업이 하기 싫어 제주에 '도망'을 온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낚시를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풍광에 반한 그는 '언젠가 작은 공방 하나 만들어 쉬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결국 다시 도자기 품으로 돌아갔다. 그후 제주가 그리울 때마다 찾았고 그때마다 화산재와 송이 등 지금의 그를 만든 '특별한 재료'들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이 되어 보니 내 직업이 되어 있었고 '도예가'라는 분에 넘치는 이름이 붙더군요. 그냥 '그릇 만드는 사람'이죠. 도자기를 피해 도망을 왔던 제주에서 제2의 도자기 인생을 살고 있으니 참 기구한 팔자죠." 제주에서의 숙명같은 작업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 같다. 우선 5월쯤 '제주화산토'를 이용한 대형 접시를 제작해 한국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한다. 또 제주의 아이들이 화산토를 활용한 도자기와 친해질 수 있는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싫어 제주까지 도피했던 김대표의 일은 고스란히 장남 형진씨에게 물려졌다. 형진씨에겐 어린시절 아버지의 작업장이 놀이터였다. 다른 친구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부러웠던 아들은 흙으로 비행기·자동차를 만들어 놀았다. 그에게 아버지는 높디높은 성벽 같았다. 그래서 도자기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전자계산학을 전공했다. 그토록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그는 몇해전 제주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해 도자기와, 아버지와 씨름하고 있다. 아버지는 맨 힘으로 일궈야 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아들에게 너그러울 수 없다. "자식에 대해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늘 부모님께 빚을 졌고 그 빚을 자식에게 갚는 게 숙명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언젠가 나를 능가하는 도예가가 됐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쓴소리에 섭섭할만 한데 형진씨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있어선지 담담하다. 아버지에겐 부족해보이는 아들이지만 아들도 내년엔 개인전을 연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일본에서 전시회도 갖는다. "전 누군가 사고 간 제 도자기가 멋진 진열장에 놓이는 것보다 '생활속에서 너무 잘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생활에서 쓸모있는 '나만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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