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칠성로 인근에서 40년 가까이 세탁소를 운영중인 고대업·이순자씨 부부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카메라를 향했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고객들이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정성껏 다뤄 1시간 거리서 세탁물 가져오는 단골도 있어 제주시 칠성로 인근에서 40년 가까이 세탁소를 꾸려오는 이가 있다. 고대업(64)·이순자씨(65) 부부와 아들 윤호씨(35)의 일터인 '화신사'다. 주택가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간판이 세탁소고, 대개는 가까운 곳을 찾는다. 하지만 고씨의 세탁소엔 인근뿐만 아니라 멀리서도 찾아온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모슬포나 성산에서도 세탁물을 모아뒀다 들고 오는 이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기자가 세탁소를 찾은 날도 노형동에서 세탁물을 찾으러 온 중년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왜 멀리까지 오셨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여러 세탁소에 옷을 맡겨봤지만 가장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그 짧은 대답속에 고씨가 수 십년간 세탁소를 꾸려올 수 있었던 정답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값비싼 옷을 믿고 맡겨도 된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게 세탁물을 정성껏 다루는 건 고씨가 줄곧 지켜온 고집이기도 했다. 고씨가 세탁업과 인연을 맺은 건 1959년이다. 제주에 세탁소가 30곳이나 될까한 시절, 세탁소에 취직해 기술을 열심히 익혔고 혼자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자 1964년 동문로터리 인근에 세탁소를 차렸다. 군대생활 3년을 빼곤 죽 세탁소를 운영했고, 1972년 칠성로 근처로 자리를 옮기며 당시 1백70만원이란 큰 돈을 투자해 드라이크리닝 기계를 구입했다. 고씨가 처음 세탁기술을 배우던 시절,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다리미의 열 조절을 잘못해 옷감을 태우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이 없어 세탁과정에서 손상된 의류를 손님의 요구대로 보상해줘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1970년대만 해도 고가품 의류의 드라이크리닝을 다른 지방에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혹시나 의류가 손상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죠. 그런 손님들을 맞고 믿음을 주기 위해 세탁물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였어요. 지금도 낯익은 얼굴들 중엔 40년 된 단골들도 있어요." 때가 탄 세탁물이 드라이크리닝과 고씨의 재빠른 손놀림으로 다림질 과정을 거치고 나면 윤기가 흐르며 마치 새 옷 같다. 그런 솜씨를 아들 윤호씨가 이어받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다림질은 못하게 하더니 아들이 배우는 건 그래도 좋은가 봐요. 보람이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새 옷이 됐다며 만족해하는 것 이상이 있겠어요?" 부인 이씨의 말이다. 힘든 고비도 있었다. 1974년 유류파동과 뒤이어 구김이 없는 나일론 제품의 인기몰이로 세탁물량이 줄어들어 고전했다. 어려운 시기를 넘겼더니 80년대 광택감있는 실크가 등장하면서 세탁물량이 그나마 늘었다.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도 더러 있다. 간혹 옷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받았다가 세탁후 부분 탈색이나 담뱃불로 구멍난 곳이 발견될 경우 책임소재를 놓고 손님과 갈등을 빚는다. 세탁물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따라 보상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젊었을 적엔 하루종일 세탁소 안에서 세탁물과 씨름하며 지내는 게 따분하게 여겨진 적도 있어요. 지금은요? 참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돼요. 네 자녀들 공부시키며 그럭저럭 생활해 왔고, 일반 직장인이라면 진작에 퇴직할 나이인데도 여전히 일할 수 있고 건강이 허락하면 앞으로도 십수년은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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