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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100년
[감귤100년 위기를 기회로](1)프롤로그
제주 버팀목 감귤산업 '미래 100년' 대전환 활로 찾을때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입력 : 2010. 01.01. 00:00:00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12월 제주감귤 발전 100년 사업단과 태스크포스(TF)팀을 출범시켰다. 이를 계기로 제주감귤 발전 100년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된다. /사진=한라일보 DB

1세기 거치며 제주 '생명산업' 독보적 위치
FTA 속속 체결 '제로관세' 완전 개방 직면
감귤산업 100년 기념사업·발전대책 등 모색

2011년은 노지온주 밀감이 도입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공식 기록된다. 이 보다 앞선 시기에 도입됐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긴 하지만 이 때가 경제적 소득을 목적으로 산업적 측면에서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제주감귤산업 100년은 제주감귤이 부흥기를 거치며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오늘의 제주를 이룩해낸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또 자유무역협정으로 개방 압력에 노출되면서 '제로관세'시대에 직면한 제주감귤의 비전을 설계하고 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출발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12월 제주감귤 발전 100년 사업단과 태스크포스(TF)팀을 출범시켰다. 이를 계기로 제주감귤 발전 100년 기념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된다.

제주에서 감귤은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의 수량을 개정한다는 고려 문종 6년(1052)의 기록으로 보아 그 보다 훨씬 전부터 왕실에 공물로 바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제주에는 많은 감귤원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조정에 진상품 생산을 위한 것이어서 주민소득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 진상한 감귤을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진상용(공납량)의 증가와 지방관리 등의 횡포로 그 민폐가 막심했다. 감귤원을 맡은 농민들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일부러 귤나무를 고사시키는 일이 잦았다. 진상제도는 조선조 고종 31년(1893년)에 이르러 폐지되었으나 농민들은 감귤재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서귀포시 서홍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 제주분원 내에 남아 있는 100년 수령의 감귤나무.

# 제주감귤 1000년의 역사
농촌진흥청 감귤시험장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제주도내에 분포하고 있는 향토 재래귤의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0년 이상 고령수 185그루를 확인했다. 고목의 수령은 100~199년 99그루, 200~299년 53그루, 300년 이상 31그루다. 최고령 감귤나무는 수령 367년의 진귤(2008년 조사시점 기준)로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 있다. 재래귤 중 가장 많은 품종은 당유자와 진귤로 100년 이상 고령수가 각각 91그루, 67그루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 감귤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20세기초 온주밀감 도입
제주감귤은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전환기를 맞는다. 이 때가 경제적 소득을 목적으로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다. 근대적 의미의 제주감귤 재배의 시작이다. 그 효시는 개화파의 주역이자 대신인 박영효로 전해진다. 박영효는 1884년 김옥균 등과 함께 일으킨 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한 후 1907년 9월에는 제주도에 유배되어 1년간 적거생활을 했다. 그 후로도 유배기간을 합쳐 3년간 제주에 머물렀다. 박영효가 제주에 거주하는 동안 원예작물의 재배를 널리 장려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개량 감귤을 제주시 구남천(구남동)에 심었으나 그가 제주를 떠난 후에는 점차 자취를 감춰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한 그루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감귤주산지인 서귀포 지역에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한 주역은 20세기초 프랑스 출신의 타케(1873∼1952, 한국명 嚴宅基) 신부로 전해진다. 이 때가 1911년의 일이며 지금도 옛 서홍성당 자리에 당시 도입한 온주밀감나무가 남아 있다.

훗날 우리나라 최대 감귤주산지로 탈바꿈한 서귀포지역 온주밀감 재배가 타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타케 신부는 1902년 서귀포 '한논성당'에 첫 부임한 이후 1915년까지 서홍(당시는 烘爐)성당에서 선교활동과 식물채집을 하는 동안 일본으로부터 온주밀감(溫州密柑) 15그루를 들여와 서홍성당 일대에 심었다. 지금도 서홍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 제주분원 내에 1그루만 남아 있다.

이를 흥미있게 지켜보던 사람은 서귀포에서 상업을 하던 일본인 '미네'였다. 그는 타케의 경험으로 서귀포 지역에서도 온주밀감의 재배가 가능한 것을 보고 1913년에 많은 묘목을 도입해 서귀읍 서홍리에 심었다. 이 때 조성된 과원이 제주농원이며, 이는 처음으로 규모를 갖춘 큰 농장이었다. 이후 하논분화구 경사지 등으로 재배범위가 확대되었다.

# 박정희 대통령 감귤발전 부흥
제주감귤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1964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순시때 감귤 주산지 조성계획을 마련토록 지시하면서부터다. 이어 1968년 제주도에서 본격적인 감귤산업 총괄 육성이 시작됐다. 1981년 11월에는 제주도 직제에 단일과수로서 감귤과가 신설됐다. 1964년 110ha, 1200여톤에 머물던 제주감귤은 1982년에 이르러 1만5500ha의 면적에 생산량 32만톤, 조수입 1000억 시대를 열었다. 이어 2005년에 6000억, 오는 2017년에는 1조원 시대 개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감귤은 1세기가 지난 21세기에 다시 시련을 겪고 있다. 수입 개방으로 국경없이 넘나드는 과일이 쏟아지고 있으며 제주감귤은 과잉생산과 유통처리난에 시달리고 있다.

'감귤발전 100년' 한라일보도 함께합니다

본사, 2006년부터 '감귤 100년' 집중 기획보도
감귤마라톤 7회째 개최… 생명산업 홍보 앞장


한라일보사는 제주의 생명산업인 감귤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제주감귤의 경쟁력을 키우는데 주력해 왔다. 본사는 지난 2003년부터 매년 감귤 출하기인 11월에 제주감귤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열린 감귤마라톤이 7회째다. 감귤마라톤은 제주의 생명산업을 주제로 열리기 때문에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속에 열려 왔다. 대회 운영과 참가 규모도 가장 모범적이고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감귤 애호가들과 마라톤동호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다른지방 참가자들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라일보는 한미FTA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2006년 10월 '제주감귤 100년' 기획을 도내 언론 중 처음으로 시작한 이래 집중기획보도를 계속해 왔다. 개량감귤이 도입된 20세기초로 거슬러 올라가 제주 근대감귤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100주년 기념사업, 그리고 '관세 제로'시대에 대비한 FTA 대책과 농가의 자구노력 등 발전방안에 대해 진단해 왔다.

도내 학계와 관련당국도 제주감귤산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론화에 나섰다. 이는 제주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감귤산업을 개량감귤 도입 100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재도약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또한 FTA 개방 파고를 넘어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대전환의 프로젝트라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제주감귤클러스터혁신위원회와 제주대학교는 2008년 제주도의 의뢰로 700여쪽 분량의 감귤산업 발전사를 집대성했다. 지난해에는 개량감귤 도입 100주년을 기념하고 감귤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해 왔다. 제주자치도는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해 12월 제주감귤발전 100주년 기념사업 계획을 구체화하고 사업단과 TF팀을 발족시키기에 이르렀다.

한라일보는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준비하는 대전환기에 놓인 제주감귤산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위해 도민과 함께하는 감귤 100년 연중기획에 다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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