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 산물 - 선사유적지 등 역사문화 자원 풍부해 제1코스인 '별-원 산물'은 사라봉에서 원당봉까지 코스로 총 길이가 약 10km에 이르며, 20여개소의 용천이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별도정수장(사라봉)에서 시작해 '엉물'이 있는 삼양 원당봉까지로, 이 구간에는 오름과 환해장성, 선사유적지, 삼양해수욕장 등 역사유적과 명승지 등이 많다. 이 코스에서는 아직도 옛길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상과 선인들의 발자취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제주항 외항공사 현장을 조망할 수 있고, 멀리는 한라산과 제주시 삼양방면의 발전해 가는 시가화 모습도 볼 수 있다. 도보로 3시간 정도 소요되며, 제주지역에서 산물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지역이다. ▲삼양 해안도로 동쪽 끝에 위치한 설개용천군은 담수가 솟는 곳이 여럿 있어서 용천군이라 불린다. 동쪽으로부터 남자목욕통, 큰물, 독통물, 새도리(림물), 길 건너편에 엉덕물이 있다. 사진 아래쪽은 남자목욕통 모습. /사진=강경민기자 ▶탐라관리들의 관문 화북동 산물=화북동은 옛 제주의 관문으로, 해신사, 삼사석, 별도연대, 화북비석거리, 환해장성(곤을동, 별도), 화북진지, 거로능동산방묘 등 지방기념물이 곳곳에 산재해 문화유적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화북동에는 동제원 헹기물과 고래물, 대명물, 엉물, 중부락물(비석물), 서창물 등이 있다. 동제원(동주원, 동지원) 헹기물은 오현고 동쪽 100m 지점에 있는 용천으로, 현재 일주도로 확장공사로 멸실됐다. 동제원은 제주성과 조천진성을 오가는 길손을 위해 마련한 숙소가 있었는데, 고려관군과 삼별초군이 전투를 벌여 삼별초군의 승리로 2년여동안 삼별초군이 제주를 지배하게 된 계기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고래물은 물 옆에 고래(맷돌)가 있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화북동 금돈지포구의 동쪽에 있는 물로 해신사 북쪽에 있다. 밀물 때면 바닷물로 덮여 버리는데, 현재는 시멘트로 단장돼 옛 정취가 사라져 버렸다. ▲모래찜질로 유명한 검은모래해변인 삼양해수욕장에도 용천수가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탐라선인의 삶이 어우러진 삼양동 산물=삼양동은 제주의 선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 대단위 복합유적지로 밝혀진 '삼양동선사유적지'와 보물 제1187호인 불탑사 5층석탑 등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모래찜질로 유명한 검은모래해변인 삼양해수욕장과 용천수, 원당봉이 있는 매력적인 지역이다. 이 삼양동에는 엉물, 저싕물, 가막작지물과 우미소물, 설개용천군, 골각물, 가물개물, 버렁용천군 등이 산재해 있다. 가막작지물과 우미소물은 상수도가 개설되기 이전까지 식수원이었으나 현재는 삼양제3수원지의 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양 해안도로 동쪽 끝에 위치한 설개용천군은 담수가 솟는 곳이 여럿 있어서 용천군이라 명명했다. 동쪽으로부터 남자목용통, 큰물, 독통물, 새도리(림물), 길 건너편에 엉덕물이 있다. 독통은 물이 나오는 곳이 닭둥우리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인데, 농기구나 빨래를 하는 물로 사용됐다. 새도리물은 굿을 할 때 깨끗한 물을 뿌리며 정화시키는 나쁜 기운과 잡귀인 새를 쫗아내는 '새도림'을 하기 위해 이 물을 길어서 쓴데서 연유됐다. 큰물(여자목욕탕)은 용천군 중에서 면적이 크고 수량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태경기자tkchoi@hallailbo.co.kr [산물여행, 스토리를 입다] "아름다운 육각수를 커팅하다" 제주 사람들은 곶자왈을 '곶', '자왈', '숨골'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다고 해요. 비가 오면 마치 스펀지처럼 물을 땅 속으로 곧바로 스며들게 하죠. 그리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필터 역할을 해 깨끗한 지하수로 저장되어 있다가 용천수로 분출된답니다. 제주에는 이런 용천수가 오백 군데 정도가 있습니다. 용천수가 오백 군데가 있는 이유는 제주창조신 설문대할망의 아픈 모정이 담겨 있죠. 그 얘기는 이렇습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 명의 아들을 낳았답니다. 오백 명의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했죠. 세월이 흐르고 아들들이 장성해서 늙은 어머니를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지요. 어느 날 아들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간 사이 설문대할망은 허기져서 돌아올 자식들을 위해 죽을 쓰고 있었지요, 오백한명이 먹을 어마어마하게 큰 솥에 죽을 쑤다가 그만 실수로 솥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자식들은 집으로 돌아와 끓고 있는 죽을 보자 맛있게 퍼 먹기 시작했지요. 맨 마지막 오백번째 아들이 죽을 뜨려다 천과 사람의 유골을 보게 되었지요. 깜짝 놀라 물로 헹구어내자 그것은 아침에 어머니께서 입으셨던 옷가지였어요. 막내가 이 사실을 형들에게 고했지요. 당황한 형제들은 한라산 산신령께 가서 울며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산신령은 죽은 어머니를 먹은 거나 다름없다하며 사백구십구명의 자식들의 죄를 물어 모두 바위가 되게 했지요. 그리고 혼자가 된 막내 오백번째 아들은 졸지에 어머니와 형들을 잃고 그 슬픔에 바다로 가서 울다 지쳐 바위가 되었습니다. 저승에서 지켜보던 설문대할망은 제 실수로 바위가 된 자식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눈물로 삼백예순날을 보냈지요. 흐른 눈물이 가슴을 타고 내릴 때마다 신기하게 제주 섬에도 오름이 하나 둘 봉긋봉긋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삼백 기가 넘는 오름들이 마치 통통 분 엄마의 젖가슴처럼 한라산 자락에 생겨나게 됐죠. 설문대할망의 눈물은 비가 되어 오름을 타고 곶자왈을 지나 바닷가로 흘러내렸습니다. 섬의 젖줄기가 되어 용천수로 솟았죠. 설문대할망이 젖 물리고 키운 오백아들의 숫자만큼 용천수가 생겨난 것입니다. 한라산에 오르면 오백나한의 기상이 넘치는 걸 느끼실 겁니다. 설문대할망의 한없는 자식사랑 때문이죠. 그러니까 설문대할망은 젖줄기가 마를 날 없이 청정한 물을 줘서 섬사람들이 오백나한을 우러르게 만들었지요. 그 후부터 제주에서는 물을 더욱 신성하고 귀하게 여겼죠.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설문대할망이 베푸는 사랑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물은 가장 빛나는 화산암반의 커팅술로 만들어낸 물방울입니다. <제주인적자원개발지원센터 제공>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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