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제주사람들과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이 되어주는 시외버스가 지친 여정을 풀고 다시 출발하는 곳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오래도록 낡은 옷을 입고 세월을 보낸 터미널이 몇달전 '이야기가 있는 예술의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누구못지않게 기뻐했던 사람이 있다. 낡은 모습일때부터 지금까지 터미널 앞을 15년 넘게 지키고 있는 구두수선공 박태동 할아버지(73). 늘 바쁘게 돌아다니는 기자라는 직업 때문인지, 걸음걸이가 잘못된 탓인지, 아니면 '든든한 하체'를 가진 신체적 특징 때문인지 모르지만 보름이면 구두굽을 갈아야하는 특성 때문에 종종 들르게 되는 박 할아버지의 '제주기능미화박스 1호'를 찾은 지난 19일 문득 빛바랜 사진이 가득한 수선집을 지키는 할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박 할아버지는 뜻밖에도 내로라하는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서울 을지로에서 태어났고 영등포구청 건설과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40여년전 우연히 제주에 오게 됐고 나중에 살고 싶어 땅을 샀다. 그런데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만다. 그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개척교회 목회자로의 길을 걷기 위해 제주에 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가려던 길 대신 구두수선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는 터미널마다 구두수선코너가 있는데 여기에는 없었지. 그래서 터미널 사장님께 부탁해 시작했어. 그때는 공간이 없어서 눈과 비바람을 다 맞아야 했어. 그래도 그때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열명이 고작이야." 수선하려는 사람들은 적어지는데 수선일을 하려는 사람은 늘어나니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몇해전부터는 수제구두와 구두밑창, 솔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는 것 보다 쓰레기가 늘어가는 게 더 속상하다고 했다. "요즘에는 값싼 중국산 구두가 많이 들어와서 신발을 고치기 보다는 헐면 바로 버리고 새것을 사버리거든. 그러니 버려지는게 다 쓰레기지, 쉽게 버리고 쓰레기는 넘쳐나고 걱정이야."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그래도 심심하진 않아. 지금은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 노인들이 일하기가 쉽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기를 계속 지키려고…" 그래도 다행인 건 요즘에는 '할머니 단골고객'의 발길이 잦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낼 곳이 없어 춤을 추러 다니는 할머니들이 신발을 고치러 오는 일이 많아. 단골이라서 다른데 맡기지 않고 꼭 내가 있을때만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 15년전 처음에 문을 열때는 굽갈이 요금이 1500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3000원이다. 10월부터 1000원씩 올리라고 하는데 올리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오는 사람이 없는데 가격만 올리면 아예 고치려는 사람들이 없어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모두 서울에 있고 아내는 몇해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자녀들이 '올라오라'고 아우성이지만 가면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내려오고 만다고 했다. "목도 아프고 눈이 따가와서 거기 있을 수가 없어."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신발을 고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신발안에 까는 밑창을 사러오는 사람, 밖에 걸려있는 수제 구두가 얼마인지 묻는 중년여인이 고작이었다. 무엇을 고쳐쓰다보면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그만큼 그 물건을 쉽게 버릴 수 없고 당연하게 쓰레기를 줄이게 된다. 할아버지의 수선가게에 손님이 북적이는 날을 기다리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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