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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보존 활용방안 특집
[신년기획/제주의가치! 세계의가치]유적 보존과 활용… 국내·외 현장을 가다-(1)日 산나이마루야마 유적
원시문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건축물 매우 인상적
이윤형 기자
입력 : 2011. 01.01. 00:00:00

▲복원해놓은 산나이마루야마의 상징 건축물. 왼쪽이 굴립주건물이고, 오른쪽이 수혈식 건물이다. /사진=이윤형기자

고산리 화살촉과 비슷한 석촉 등 눈길
유물 단순전시 아닌 사람이야기 담아내


최근 들어 제주도의 유적 발굴 현장을 보존 정비하고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가사적인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나 고산리 선사유적지 등은 사적 지정만 해놓은 채 체계적인 발굴과 정비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제주도내 대다수 유적지들도 무관심속에 방치되면서 훼손위협에 노출돼 있다. 국내외 유적 보존 활용현장을 찾아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본다.

1. 日 산나이마루야마 유적

지금부터 약 1만년 전 한반도는 신석기문화 시대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신석기문화는 제주도의 고산리에서 확인됐다. 1만년 전 제주가 고산리로 대표되는 초기신석기시대에 접어들었다면 일본은 죠몽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다. 죠몽시대는 지금부터 약 1만2000년 전부터 2300년 전 무렵까지 이어졌다. 죠몽시대의 특징은 토기문화가 이른 시기에 나타나서 번성했다는 점이다. 새끼줄로 문양을 새긴 토기를 사용했다고 해서 '노끈 승'(繩)자를 써 죠몽(繩文)시대라 부른다. 고산리식 토기도 곧잘 죠몽시대 초창기 토기와 유사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이 바로 일본 본토 북동부 끝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의 산나이마루야마(三內丸山) 유적이다. 이 유적은 5500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해 4000년 전에 소멸됐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은 죠몽지유칸(繩文時遊館)을 통해서 들어가면 펼쳐진다. 죠몽지유칸은 유적의 입구에 해당한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발굴현장에 그대로 복원해 놓은 대형 수혈식 건물과 굴립주 건물이다.

대형 수혈식 건물의 규모는 길이 32m, 폭 10m에 내부 면적은 76평 정도에 이른다. 성인 200명 정도가 한꺼번에 집회가 가능한 면적이다. 이곳에서는 이같은 대형 주거지 20기가 발굴됐다. 이 대형 수혈식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

유적 해설사는 일반 주거지가 아닌 공동집회소나 작업장, 혹은 공동주택 등으로 생각된다고 말한다. 발굴 결과 기둥은 밤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2층 구조로 추정되는 이 건물을 복원하는데 2억 엔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곳 관계자들은 대형 주거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보존만 하기보다는 활용도 동시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노출된 유구 위에 건물지를 복원하고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산나이마루야마 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토기들.

▲흑요석으로 만든 다양한 석기들.

기둥 6개가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굴립주 건물은 산나이마루야마의 상징이다. 발굴과정에서 직경 2m, 깊이 2m의 대형 구덩이 6개가 드러났고, 그 내부에서 썩다 남은 직경 1m에 이르는 밤나무 기둥이 발견된 것이다. 기둥의 압력으로 흙이 압축돼서 나타난 흔적이 깊이20m 정도에 이르러 지금으로 따지면 6층 건물 높이의 구조물로 분석됐다고 한다. 복원된 굴립주 건물의 높이는 15m 정도이나 실제로는 더 높았었다는 것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복원에 쓰인 밤나무는 러시아 산이다. 일본에는 그처럼 큰 밤나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당시 식생을 고려해서 도토리나무, 밤나무 등으로 재현해놓았다. 해설사는 기둥 하나의 무게가 8톤이나 된다고 말했다.

연장이라고는 돌도끼가 최고였던 원시문명 시대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죠몽시대부터 밤나무가 거대 건축물의 기둥으로 쓰였던 것을 보면 오늘날 아오모리현의 시라카미 산지가 세계 최대급 너도밤나무 원생림으로써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해가 간다.

이 대형 굴립주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도 뭐라 딱히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바다나 주변을 조망하는 전망대라든가, 접근하는 배들이 굴립주 건물을 보고 찾아오도록 하는 랜드마크 기능, 의례행위와 관련된 신전같은 성스러운 상징 건물, 혹은 천문대 역할 등등으로 추측할 뿐이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에서는 죠몽인들의 일반 주거지 550동 정도 발굴되고, 약 220개의 어른 무덤과 800기 정도의 아이무덤이 발굴됐다. 산책로를 따라 당시 주거지와 창고, 무덤군, 쓰레기장 등이 복원됐다. 발굴유구 단면도 그대로 전시해놓아 견학할 수 있도록 했다.

출토유물들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전시실에서는 흙으로 사람의 얼굴을 빚은 토우(土偶)를 비롯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촉 등 각종 석기류, 아가리 부분에 불꽃 장식이 있는 화염토기 등 출토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특히 흑요석 화살촉은 고산리 출토 석기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은 유구나 유물의 출토량이 엄청나다. 발굴현장이나 전시관에서도 이 점은 뚜렷이 각인된다. 전시관은 유물 자체도 중요하지만 유물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많다. 죠몽인이 나고 자라서 결국에는 여행이 끝나는 사람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나가시마 유타카(永嶋 豊) 산나이마루야마 문화재보호주사는 "현재 연 31만 명 정도 방문하고 있는데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며 "유료로 하면 관람객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유적을 통해서 교육과 활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산나이마루야마유적 입구.

[ 발굴에서 보존까지…]체계적 유적발굴 정비 진행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은 우연찮게 발견됐다. 1992년 아오모리현에서 야구장을 건설하기 위해 구제발굴을 하자 대규모 유적이 드러난 것이다. 이어 1994년 대형 굴립주 건물지가 발굴되자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야구장 건설은 취소되고 유적 보존결정이 내려졌다. 2000년에는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유적의 보존 활용구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39ha에 달한다.

유적 정비에는 500억 원이 투입됐다. 사업비는 전액 아오모리현의 재원으로 충당됐다. 현재도 발굴중이며, 발굴과정은 교육현장으로 활용된다. 발굴에 참여했던 고고학자들과 지역주민 들로 위원회를 구성 운영에 참여하고 발굴과정 등을 공개한다.

유물정리 작업 등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개할뿐만 아니라 토기제작 과정을 직접 시연하는 등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오모리현 외의 사람들을 위해 연 4회 정도 마쯔리를 개최하면서 유적의 중요성 등을 홍보한다.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체계적인 유적발굴과 정비 등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윤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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