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한살의 김영희 할머니가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장을 들어보이며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승철기자 가정사정으로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해 75세에 방송통신대 전국 최고령 입학 "나이는 숫자에 불과"… 늘 사전 들춰 여든한살의 김영희(제주시 이도2동) 할머니.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정정한 외모에 "왜 이렇게 젊으시냐?"고 묻자 "평생 목말라하던 공부를 해 행복해서 그렇다. 공부는 내 인생을 밝혀주는 등대가 됐다"는 답이 돌아온다. 김 할머니는 68살에 공부를 시작해 검정고시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쉼없이 2005년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전국 최고령 입학자'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주인공이다. 할머니는 방송통신대 3년 과정을 마쳤다. 인생 황혼기에 배움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할머니는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여덟살 때 "학교에 보내달라"고 울며 떼도 써봤지만 "여자가 학교다녀서 뭐하느냐?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는 타박만 들어야 했다. 성년이 돼서도 삶은 순탄치 못했다. 서른여덟살 때 장사 실패의 충격에 빠져살던 남편이 빚과 어린 네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으로 끼니를 거르면서도 딸들에게 만큼은 공부를 원없이 시켜야겠다며 억척같이 버티던 시절이었다. 수선바느질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보험설계사로 일하게 된 김 할머니는 발이 부르트도록 하루 50명 이상의 고객을 만나러 다녔고, 꼼꼼한 고객관리로 계약 실적은 갈수록 상승가도를 달렸다. "30년 가까이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못배운 한과 설움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한글도 못깨우쳤으니 초반엔 보험계약서도 고객한테 직접 쓰라고 했다. 먹고 사느라 바빴지만 공부를 향한 열망은 더 커져만 갔다." 김 할머니는 큰 딸이 고등학교, 세 딸이 대학까지 마치고 결혼하자 보험일을 그만두었다. '나를 위해 인생을 살아야겠다'며 용기를 내 동려야간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공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 속에서 시작한 공부는 김 할머니에게 평생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안겨줬다. 책장을 넘기면 쏟아지는 글자들처럼 생생한 기억들이 많지만 제주일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시절은 더 각별하다는 할머니. "담임이셨던 김철호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인자함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함께 입학한 우리반 40명 가운데 2명을 빼곤 모두 졸업했다." 할머니는 아들 딸, 손자 손녀뻘되는 반 학생들에게 수업 전날이면 매일처럼 "내일 학교에 꼭 나오라"고 전화 다이얼을 돌려댔다. 주변에서 어렵게 시작한 공부를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우수한 성적은 물론이고 모범학생상, 근면상 등으로 빼곡하게 남았다. 김 할머니는 요즘 살아가면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의 메일을 띄우고, 관공서 홈페이지에도 글을 자주 남긴다. 자신의 인생경험이 행여 다른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공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세상에서 배우지 않으면 노인들은 더 외롭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김 할머니. 컴퓨터 옆에는 메일을 쓸 때마다 글자 받침이나 맞춤법이 틀리지 않을까 수십번씩 찾아본다는 국어사전이 놓여 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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