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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보존 활용방안 특집
[유적 보존과 활용 어떻게 할 것인가]
국내외 유적 정비현장을 가다/(5)이와주쿠 유적 박물관
전환기 문화양상 간직… 고산리 유적과 닮은꼴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입력 : 2011. 03.02. 00:00:00

▲이와주쿠유적 박물관 전경. /사진=이윤형기자

일본에서는 첫 발견된 구석기 유적으로 유명
"유물수장에만 치우치면 박물관은 박제된 공간"

일본의 구석기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10년 전 벌어진 유물 날조사건이다. 2000년 10월 일본에서는 구석기 유물 날조사건이 한 언론의 보도로 밝혀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구석기 문화는 전기까지 올라갔다. 한 고고학자가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지에서 70만 년 전의 석기 3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발표하면서 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발굴 현장에 유물을 묻는 장면이 언론에 의해 폭로되면서 날조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후 그가 날조한 구석기 유적은 수 십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지금까지 일본에서의 전기 구석기 유적은 백지화된 상태다. 일본의 구석기 문화는 이 일로 인해 심각한 학문적 위기와 신뢰를 상실했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일본에서 구석기 유적은 1만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박물관내에 당시 맘모스를 재현해놓은 모습.

기자가 방문한 군마현(群馬縣) 이와주쿠(岩宿) 유적 박물관 역시 구석기 문화와 관련 있는 곳이다. 이와주쿠유적은 일본에서는 첫 발견된 구석기 유적으로 유명하다. 한국으로 치면 충남 공주의 석장리유적에 비견되는 것이다. 1964년부터 조사되기 시작한 석장리유적 역시 한국에서는 처음 확인된 구석기 유적으로 고고학적 의미가 크다.

이와주쿠유적은 1946년 처음 발견됐다. 이어 1949년 9월 메이지대학 고고학연구실에 의해 학술조사가 시작돼 3만년 전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흑요석재로 만든 석기를 중심으로 한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죠몽시대 토기까지 출토돼 후기구석기에서 죠몽시대로의 진입을 밝혀주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주쿠유적의 시기설정은 가고시마현 사쿠라지마의 북쪽에 있었던 아이라 화산이 2만5000년 전(지금은 2만9000년 전으로 상향) 폭발하면서 분출한 아이라화산재층을 통해 비정이 이뤄졌다. 화산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화산재로 연대추정을 하면서 '화산재 고고학'이 생길 정도다.

▲이와주쿠박물관 관장이 직접 화살촉 제작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이와주쿠유적은 후기구석기에서 죠몽시대로의 전환기 문화양상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산리유적과 유사하다. 고산리유적의 경우도 후기구석기 말기에서 초기신석기로의 전환기 문화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와주쿠유적에 대한 발굴은 일본에 있어서 본격적인 구석기 문화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와주쿠유적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나온 다양한 출토유물과 일본 구석기 문화가 망라돼 있다. 박물관은 1994년 개관 당시는 영상자료 등 최신식 기법을 동원해서 건축됐으나 17년이 지나면서 시설면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풍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발굴과정에서부터 인류의 시대와 자연환경은 물론 석기제작과 석기문화 등을 엿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발굴 유물들과 발굴 당시의 층위 및 레프리카 등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당시의 환경을 다양하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석기유물을 놓고 석기인지 아니면 단순 석재인지 연구자들 사이에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유물도 나란히 전시해놓았다. 관람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해보라는 의미에서다. 맘모스화석 등 실제 출토유물들의 경우도 관람객들이 만져볼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기념 스탬프를 찍어 간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야외 전시공간에서는 빙하시대 식생과 구석기시대 당시의 주거공간 및 러시아에서 수입한 맘모스뼈로 만든 주거지 등을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 동호회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아마츄어인 이들의 화살촉 등 석기제작 솜씨는 고고학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다. 동호회에서 만든 석기는 기획전을 통해 선보이기도 한다. 전용공간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들의 작품은 실제 유물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마사오 고스케 관장은 "박물관은 이제 더 이상 수장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주민과의 교류 및 교육과 홍보,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박물관이 유물 수장에만 치중할 경우 박제화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계획 수립에서부터 사적 정비에 이르기까지 이와주쿠유적보존정비위원회가 설치돼 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정비에 나서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 발굴에서 보존까지…] 1946년 처음 발견… 1994년 박물관 개관

이와주쿠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46년이다. 이어 1949년 9월 메이지대학 고고학연구실에 의해 학술조사가 시작돼 3만년 전 중기구석기부터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으로 밝혀졌다. 이후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면서, 1979년에는 이와주쿠유적 18만7187㎡면적이 국가지정 사적이 됐다.

이어 1982년에는 사적이와주쿠유적보존정비위원회가 설치돼 보존정비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실시설계와 보존수리사업을 이어갔다. 유적보존정비위원회가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체계적인 정비와 활용계획이 수립됐다.

현재의 박물관은 1994년 개관됐다. 부지매입비 150억 원을 포함 건축비 250억 원이 소요됐다. 현재는 연 2만5000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고 있으며, 대부분 어린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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