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옥 할머니는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물질을 하고 싶다고 한다. 3일 오전 이용옥 할머니가 산지어촌계 잠수탈의장 옆에서 자신이 해녀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photo6n6@ihalla.com 자녀 양육위해 서른 무렵 물질 시작 최근 해산물 수확량 줄며 근심 쌓여 바르게 커 준 자식들 보면서 큰 위안 "할머니, 어떵 살암수과?" "요즘 힘들어. 매립공사로 물질하러 먼 곳까지 갔다 오는 것도 힘들고, 손님들도 없고. 근데 요새 안 힘든 사람 어디 있나?" 2일 오후. 제주외항 공사장 인근 산지어촌계 잠수탈의장 앞에서 이용옥(75) 할머니가 막 잡아온 해산물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해삼 3개, 문어 1마리. 오늘 잡은 것들이다. 고무 바구니에 담아 놓은 해산물이 팔기 위해 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가져가기 전 임시로 놔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소박하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손님은 없었다. 이튿날 오전. 여느 때처럼 이 할머니는 다시 잠수탈의장으로 출근했다. 어제보다 바람도 더 많이 불었고, 기온도 더 내려가 추웠다. 눈발까지 간간이 날렸다. 어제 잡은 해삼은 해녀탈의장 앞에서 아직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 해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제 물질 나갈 준비를 한다. 이 할머니가 바다와 연을 맺은 것은 서른 즈음이다. 여느 제주 어머니의 삶의 그러하듯 이 할머니도 가정의 버팀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자식들을 생각하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머니는 기억한다.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물질은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 때문에 물질 시작했지. 농사 짓다가 안되겠다 싶어 뛰어든거지. 지금까지 물질하고 있으니 45년을 해녀로 살았네." 자식들은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었고, 바르게 커준 자식들을 생각할 때면 할머니는 그동안 삶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어머니 걱정에 자식들은 할머니에게 바다에 그만 나가라고 했다. 나이도 많은데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속 바다와 함께 하길 원한다. "아들이 하도 걱정하면서 물질을 그만하라고 하길레, 좀 쉬어봤지. 근데 얼마 못가서 다시 나왔어. 몸이 더 아프더라고. 반평생을 계속 물질을 해왔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안하니까 몸이 근질근질 거리다가 나중엔 아프기까지 하더라고." 산지 앞바다와 이곳 잠수탈의장은 이 할머니에게서 삶의 터전이다. "이곳에 와야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해. 하루라도 이곳에 안오면 이상해. 제2의 집인 샘이지." 그런데 요즘 이 할머니를 비롯해 동료 해녀들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외항 공사로 인해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잡히는 해산물의 양이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물질을 하기 위해 공사현장을 지나 더 먼곳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을 끝내고 탈의장으로 돌아오다보면 너무 춥고 다리도 아프단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손님들이 없는 것도 문제다. 누가 공사장 옆에서 해산물을 팔고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할까. "공사장을 지나서 왔다갔다 하는게 힘들지. 장비도 장비고, 해산물까지 잡아서 오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겨울엔 엄청 추워. 근데 나중에 공사가 다 마무리 되면 또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이 할머니는 계속 이곳에 있겠단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물질을 하고 싶단다. "반평생을 물질만 했는데, 몸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해야지. 여기가 좋아."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이 할머니의 삶에 앞으로 힘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