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초가 폐교된 해인 1995년 2월, 당시 강정은 교육감이 학교를 찾아 특별수업을 하고 있다. 영락초는 이 해에 마지막 졸업생 18명을 배출하며 폐교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사진=제주교육박물관 제공 "복식수업 하느니 좋은 여건서 공부하자" 통폐합 동의 폐교 후 활용 지지부진하다 2009년 학교 건물 사라져 책을 펴든 소녀의 모습을 조각한 '독서상'이 옛 학교의 흔적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제주시에 거주하는 영락리 출신 모임 영우회에서 1981년 기증한 물품이다. 학교 건물도 사라지고 그물 빠진 축구골대만 앙상한 곳.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초등학교 자리다. ▶분교장 생긴 뒤 5년만에 본교 승격 영락초는 1970년 개교했다. 1966년 무릉초 영락분교장이 설치된 이래 4년만에 본교로 승격한 셈이다. 영락리 아이들은 분교장이나 본교가 생기기 이전 1940년에 개교한 무릉초를 다녔다. 2006년 발간된 '영락리지'는 영락초(분교) 설립 추진 과정을 소상히 다뤘다. 그에 따르면 1962년 무렵부터 학교 설립 논의가 구체화됐다. 무릉초까지 통학하는 영락리 아이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수차례 마을 총회가 열렸다. 그 결과 주민들이 십시일반해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 신축은 재일동포 등 재외 영락리 출신의 도움을 얻기로 했다. 영락초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영락리 1278번지를 학교 부지로 선정해 땅을 사들였다. 1966년 마침내 영락분교가 들어섰고 1970년엔 영락초가 문을 연다. 학교가 생길 때 너나없이 힘을 보탰다. 재일동포 23명은 학교용지 신축공사 자금 등으로 당시 20만원에서 1만원까지 내놓았다. 70년 새로운 학교 건물을 지을 때에도 영락리 출신들이 6만원에서 3만5000원까지 기탁했다. 옛 영락초 한켠에 남아있는 비석에 그런 사연이 일부 새겨져 있다. 뿐인가. 난로, 풍금, 회전 그네, 확성기 시설, 도서함, 미끄럼틀, TV, 오르간 등을 기증한 주민, 동창회, 학부모회 이름들이 영락초 역사에 줄을 잇는다. ▶폐교 아쉬움 달래며 교육감 특별수업 1회 41명을 시작으로 매해 30~40명이 졸업했던 영락초는 1992년 졸업생수가 17명으로 크게 줄었다. 이 무렵은 영락리 인구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시기다. 1993년 1016명이던 영락리 인구는 2005년 749명으로 감소한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이 한창이던 시절, 영락초에도 위기가 닥친다. 분교장 격하 이야기가 오갔지만 학부모들은 통합을 결정했다. 이들은 1994년 무릉초 통폐합 동의서에서 "분교장으로 존속해 복식수업을 하는 것보다 무릉국민학교에 통합돼 좋은 학습 여건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통폐합"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 ▲영락초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풍경들. 사진 위부터 학교 부지 등을 기증한 마을 주민, 재일동포 등의 이름을 새겨넣은 옛 교정 한켠의 비석, 건물이 사라진 채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옛 영락초, 옛 배움터의 흔적을 말해주는 오래된 독서상. /사진=진선희기자 폐교의 역사가 오래되면 될수록 마을 사람들의 상실감은 늘어갔다. 영락초는 폐교 이후 2000~2004년 해안전경대 임시 숙영시설로 사용됐다. 2004~2009년에는 종합민속박물관으로 임대가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떠나도 누군가 학교를 지켜줄거라 여겼지만 학교는 폐허처럼 변해갔다. 2009년 교사 철거는 폐교의 현실을 아프게 일깨웠다. ▶"노인들만 살게 될 것" 상실감 보여 학교 건물은 교목이던 향나무 몇그루, 하늘 높이 자란 야자수 따위를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영락분교장이 문을 열던 날 운동장이 물바다를 이룬 탓에 경운기로 내빈을 실어날랐던 일, 주민들이 '워령'('마을길 포장 등 공동으로 일할 인력을 동원하는 일'을 뜻하는 방언)으로 학교 운동장 등을 다졌던 일 등을 곱씹어보지만 공허함만 커갈 뿐이다. 김대준(71) 영락리노인회장은 "앞으로 10년이면 영락리 사람들이 지금보다 반으로 줄어들 테고 노인들만 사는 곳이 될 것"이라며 "주민들이 돌아가며 논밭이던 학교에 자갈깔고 흙 메우던 노동을 했다. 마늘 판 돈 투자해서 학교 부지를 살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어차피 교육청 재산이 될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락초가 생기기 이전이라 무릉초를 졸업한 김창식(56) 전 영락리장은 "폐교 부지의 풀을 베고 정리하는 일에도 한해 300만원이 들더라"면서 "학교 부지를 활용하기 위해 마을에서 투자를 하고 싶어도 남의 자산을 늘려주는 일같아 망설이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교가 사라진 만큼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조성한 부지를 이제는 마을에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영일회' 전 회장 홍종환씨 "폐교 이어 철거까지 1회 졸업생 더 착잡" 영락리로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홍종환씨(53·사진)는 '영일회' 회장을 지냈다. 영락분교에서 1~3학년을 났고, 4~5학년은 무릉초에서 보냈다. 그러다 마을에 학교가 생기면서 영락초에서 6학년을 마쳤다. 그는 학창 시절 풀이 무성했던 학교 운동장에 '꿩코'(꿩을 잡기위한 올가미)놓던 일 등을 추억거리로 풀어냈다. 홍씨는 모교가 폐교된 일 만큼 학교 건물이 철거되고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폐교 소식에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학생수가 줄어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학교건물은 남아서 제대로 활용했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하더라. 폐교 이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홍씨는 뜻있는 마을 사람들이 학교 부지 활용 방안으로 청소년 수련 시설, 캠핑장 등을 궁리한 적이 있지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주도교육청 재산인 폐교를 임대해 쓸 경우 다른 기관에서 시설 투자에 따른 지원에 난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아예 학교 부지를 사들이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애초에 지역 주민들이 땅과 돈을 내놓아 학교가 세워졌기 때문에 폐교된 후에는 마을에 부지를 돌려주는 게 맞다고 말한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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