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와 달리 안개꽃처럼 부드러운 여자인데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이유순씨가 집 마당에서 모두 지고 홀로 남은 장미꽃 한송이를 보며 시상에 잠겨 있다. /사진=표성준기자 가난하지만 세상 모두에게 부자되는 삶의 미학 자신의 아픔은 잊은 채 타인 위한 봉사·시 쓰기 예순세 살 미혼의 시집을 낼 계획이 없는 시인 이유순씨는 5년 전부터 안경을 썼다. 그 안경이 낡아 새것으로 바꾸려는데 대전의 청소년복지시설 나자렛집 원장수녀가 '보고 싶은 잔다르크님께'로 시작하는 손편지를 보내왔다. '오늘도 6살, 9살 자매가 우리집 막내로 살러 왔어요.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젊은 엄마의 눈물을 유심히 지켜보던 큰 아이들이 따라 속울음을 우는 잔인한 봄날입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4월의 봄날도 맛있는 삼겹살 먹을 때의 함박꽃 같은 행복도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벚꽃처럼 마음이 흩어집니다…….' "더 한 일에도 안 울었는데 요런 일에 눈물 나고 나 늙어가는 모양이야." 그래서 '화살기도'를 올리며 시 '나자렛집에서 온 편지'를 지었다. 안경 사려던 계획은 후일로 미룬 뒤 어린이날을 기다려 아이들 삼겹살 먹이라고 돈도 부쳤다. 나이가 들어서는 여고생에게 테레사 수녀의 삶이 담긴 책을 선물하는 일이 낙이다. 지금까지 2400권, 앞으로 7600권을 더해 1만권이 목표다. 돈으로 치면 1억원 가까이여서 아는 동생은 '언니나 비 새는 데 막고 살지', 친구들은 '미친년'이라고 타박한다. "나도 희망이 있어야 살지. 집착도 나눔도 아닌 치유야." 얼마 전 절에서 열린 노래자랑에 나가 대상을 차지해 얻은 20만원 미용실 이용권도 남 줬다. "여든한 살 난 할머니 세 분이 노래를 잘 불렀는데도 상을 못받으니까 7만원짜리 파마하라고 내 돈 1만원 더 붙여서 줘버렸지." 그는 3개월마다 3000원 주고 머리를 손질한다. 궁하나마 수입은 있다. 가을에 40일은 종자 채취작업, 겨울엔 감귤수확으로 산다. 다른 계절에도 일을 가리지 않다 보니 한때 80㎏ 쌀가마를 져 날랐던 허리가 지금은 굽어 그 굽은 허리를 세우기 위해 늘 책이 든 배낭을 멘다. 낡은 집 비 새는 좁은 방 한 칸은 자신이 쓰고, 나머지는 세를 줘 쥐꼬리만 한 월세도 받는다. "집이 허술해서 노숙자 전 단계의 사람들만 살아. 괜찮은 여자를 꼬셔 올 수 있으니까 마당에 꽃 화분도 많이 갖다 놨어. 언젠가는 마당을 청소하는데 한 놈이 술집작부 팔짱을 끼고 들어오기에 '나 남자세계 안다, 해라 이거야!' 모른 체 했지." 대신 시 '낮거리'를 구상했다. '너 제주년 아니지? 그러니까 이 낮에 낯짝이 좋지. 화대는 얼마 받았느냐? 공짜일까? 아니다. 뜯어먹을 것도 없는 놈. 참, 모르겠다.' "그 여자가 방에서 나왔다가 시상에 잠겨 있는 나랑 마주쳤어. 무안했던지 '이모, 꽃이 너무 예뻐요. 화분 하나만 주세요'하기에 '야! 니가 꽃인데 이 꽃이 왜 필요하냐?'고 했지. 가서 시인들한테 꼭 말해줘. 시가 별거냐? 앉아서 오줌 쉬~하면 시지." 미혼모였던 경험과 50일 만에 아이를 잃은 고통, 젊은 날의 사랑과 죽음,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생애 섹스횟수와 여러 번의 자살 충동까지 그는 그렇게 토해냈다. "인터뷰는 이게 마지막이야. 앞으론 이명박이가 와도 안해. 다음에 서귀포 오면 양주는 못사지만 막걸리는 살게. 미안한데 나자렛집에 보내야 하거든." 자신의 아픔은 삭히면서 남의 슬픔에 눈물 흘리고, 자신의 안위 따윈 잊은 채 남을 위해 기도하며, 남에게 관대하지만 자신에겐 가혹할 만큼 철저한 삶.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그 삶이 시다. 그의 시는 세상을 향해 쓰는 연서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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