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형 제주도체육회 고문은 1981년 제주도문화상 체육부문 첫 수상자로 오랜 기간 도체육회 사무국장, 상임부회장 등을 지내며 제주 체육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이승철기자 1981년 제주도문화상 체육부문 첫 수상자 체육기금 씨앗 마련… "제주체육 산증인" "제주도체육회의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처리해 왔다. 제주 체육의 산증인이다." 제주대 체육학부 교수인 이창준(60)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장. 제주대 육상부를 지도하는 등 체육인으로 활약해온 이 회장은 이욱형(82·제주시 화북1동) 제주도체육회 고문을 '추천합니다'코너에 초대했다. 이욱형 고문은 도내 체육발전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1981년 제주도문화상 체육부문 첫 수상자인 이 고문은 평생을 제주체육 발전에 헌신해온 이로 평가받는다. 육상선수였던 이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아버지뻘'되는 이 고문을 지켜보며 체육인의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이창준 회장은 그보다 25년 뒤인 2006년 제주도문화상을 받았다. 축구선수 출신인 이 고문은 1965년 제주도축구협회 전무이사, 1967년 이래 실무부회장을 지내며 축구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경기력 향상에 힘썼다. 1968년에는 제주도체육회 감사를 맡았다. 이 때부터 제주도체육회와 인연을 맺은 이 고문은 1993년까지 사무국장, 상임부회장 등을 지내며 실무를 도맡았다. 그중 1984년 제주에서 처음 열린 전국소년체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공이 크다. 그 해 제주선수단은 종합 11위를 차지했다. 경남과 인천을 누른 이같은 성과는 '성취율 전국 1위'로 제주가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됐다. 아픈 개인사도 있다. 1978년 불의의 사고로 3대 독자를 잃은 것이다. 이 고문은 아들 장례식때 받은 조의금을 체육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를 씨앗 삼아 체육인들이 하나둘 뜻을 보태며 장학기금을 이어오고 있다. 몇 년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바깥 나들이가 어렵다는 이 고문이지만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오려두는 등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늘 열어둔다. 사진 한 장, 자료집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오현중 축구부 출신인 그는 1947년 당시 광목에 검은 물을 들인 운동복을 입고 전도중등학교축구대회에 출전해 창단 1년만에 우승을 했던 옛 사진도 소중히 보관해뒀다. ▲이창준 회장 하지만 이 고문은 몇가지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중 하나가 체육영재 육성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도내 중-고-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팀 역시 취약하다. 이 고문은 "종목별 특성을 감안해 도내 실업팀을 키워야 제주 체육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환경이 갖춰지고 선수들의 스포츠정신이 더해진다면 제주에서도 김연아 같은 스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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