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흘연못은 예로부터 빨래터로, 동네 꼬마들의 수영장으로, 우마의 식수로 사용했다.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금붕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중앙으로 난 아치형 돌다리는 운치를 더해준다. /사진=백금탁기자 고추잠자리·소금쟁이 '추억속으로 오라' 손짓 500년 수령 본향당 팽나무 마을역사 고이 간직 짧은 가을, 긴 여운. 가을의 길목이다. 한낮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코스모스가 한창이고 나뭇잎 끝에도 노을빛이 발그레 물들어 간다. 제주시를 출발해 봉개동 대기고를 거쳐 회천동으로 난 중산간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와흘리를 만날 수 있다. 일주도로 동회선을 이용한다면 조천에서 한라산을 마주하고 남쪽으로 차를 돌리면 된다. ▲와흘연못 다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시비(詩碑)(위),운동장 입구에 세워진 4·3위령탑(아래), 길 어귀에 차를 세우고 마을로 난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주황빛 머금은 투박한 옛 코스모스가 반긴다. 제 빛을 다해 피웠던 봉숭아도 돌담에 기대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이라 집집마다 개들이 이방인임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짖어댄다. 가다보면 마을회관이 보이고 정보화센터도 만난다. 마을회관 구석에 이·미용실 간판을 내건 조립식 건물도 이색적이다. 10여분을 걷다보면 하늘빛을 담아낸 잔잔한 와흘연못이 반긴다. 예로부터 빨래터로, 동네 꼬마들의 수영장으로, 우마의 식수로 사용했단다. 겨울철엔 중산간지대라 곧잘 얼음이 얼어 어린이들의 놀이터로도 그만이란다. 가을이라 잘 자랐던 수련도 모두 지고 없다. 군데군데 애기마름이 물위를 떠다닌다.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금붕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물속의 거북이 나와 일광욕을 한다. 물 중앙으로 난 아치형 돌다리는 운치를 더해준다. 소금쟁이들이 물위를 떠다니며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듯 동심원을 만든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동심원을 그리며 수면위로 퍼져간다. 고추잠자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전선위로 길게 늘어선 제비들도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다리 입구를 시비(詩碑)가 지키고 있다. 짧은 싯구엔 마을의 옛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 백 년을 이어지며 살아온/와흘 사람들이 땀방울이/모이고 모여/마를 수 없는 넓은 못이 되었다//여름이면 발가벗고/그 생명의 땅 내음 속에/풍덩풍덩 빠져 놀았다//이 마을을 일궈온 할망 하르방들이/품에서//몸이 말을 해야 땀이 대답하는 삶/이 곳 근면의 원천에서/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양기훈의 '와흘 넓은 못에서' 전문> ▲도로변에 자리한 와흘본향당에 있는 500년 수령의 본향당 팽나무(신목)는 찾은 이들에게 겸허함을 전해준다. 2009년 화재로 인해 신목이 피해를 입어 현재 전면 출입이 통제돼 아쉽다. /사진=한라일보DB 운동장 입구에는 4·3위령탑이 있고 인근에는 와흘본향당과 대흘2리연못 등도 있다. 다만 2009년 화재로 인해 500년 수령의 본향당 팽나무(신목)를 보호하기 위해 출입이 통제된 것이 아쉽다. 여름이 가고나면 가을은 잠깐, 곧바로 초겨울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사색하기 좋은 가을, 한적한 마을길을 걸으며 한해를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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