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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전적지를 가다
[창간23주년 특집]고난의 역사현장 일제 전적지를 가다(134)
[괌에서 제주를 보다]
수려한 경관에 스며있는 아픈역사… 제주와 닮은 꼴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입력 : 2012. 04.22. 12:00:00

▲태평양전쟁시기의 녹슨 대포에서 놀고 있는 괌 어린이들. /사진=이승철기자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로 점철된 세계적 휴양지
태평양전쟁 시기 한국인들 강제 징용돼 많은 희생

○… 2005년부터 태평양전쟁 시기 제주도 일제 군사시설의 실체를 탐사보도하고 있는 취재팀은 지난 달 초 서태평양상의 괌을 찾았다. 괌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태평양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섬이다. 한국인들도 이 섬에 끌려와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고 전쟁 속에 희생됐다. 섬 곳곳에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지하 갱도진지 등 군사시설이 구축됐다. 괌의 아픈 역사를 통해 제주도를 들여다보자.…○

괌은 제주도와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수려한 자연풍광을 간직한 세계적 관광지인데다, 그 이면에 간직한 아픈 역사까지 제주도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태평양전쟁이 남긴 상처는 컸다. 괌은 태평양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미-일간의 치열한 전선중의 하나였다. 괌의 아름다운 풍경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면 당시 전쟁의 그림자가 오늘날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괌은 전쟁유산과 현대식 리조트가 공존하는 섬이다. 섬 곳곳에는 태평양전쟁의 치열했던 전투를 보여주듯 당시의 흔적들이 생생하다. 사시사철 휴양객들로 붐비는 바닷가의 최신식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포대를 보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탄환자국이 생생히 남아있는 콘크리트 토치카는 바닷가를 찾은 휴양객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불과 60여 년 전의 처절했던 전쟁의 기억을 알기나 할까.

▲현대식 리조트가 즐비한 해안가에 남아 있는 태평양전쟁시기에 만들어진 토치카에서 휴식중인 관광객들. /사진=이승철기자

괌은 예전부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괌의 역사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기부터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괌은 1898년부터 미국 영토가 됐다. 이후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마자 3일 만인 1941년 12월 10일 괌을 침략했다. 일본군으로서도 괌은 오가사와라제도로 연결되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어서 전쟁 초기 괌 장악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괌 방어를 포기한 가운데 일본군은 무혈입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름도 '위대한 신의 섬'이란 뜻이 오오미야지마(대궁도)로 바꾸는 한편 섬 전체에 일본식 지명을 붙였다. 한반도에서처럼 주민에게 일본어와 문화를 강요하는 강제적인 동화정책이 펼쳐진 것이다.

동시에 섬 곳곳에 괌의 원주민인 차모르인과 한국인들을 동원 지하 갱도진지를 만들고 토치카, 포대를 설치하는 등 미군과의 장기전에 대비했다. 제주도가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에 의해 요새화됐듯이 괌도 섬 전체가 거대한 요새로 변했다.

미군의 괌 탈환을 위한 제1상륙지는 아산비치다. 취재팀이 찾은 아산비치는 길이 약 2km에 이르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이다. 이곳에서 1945년 7월 21일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미군은 괌을 되찾았다.

괌 전투에서의 승리는 태평양전쟁에서의 승리로 귀결된다. 괌은 서태평양의 교두보이자 군수물자 보급기지다. 현재 미국 공군의 핵심인 앤더슨기지와 해군기지가 이 섬에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도쿄 대공습에 나선 B-29 출격도 괌에서 이뤄졌다. 괌을 두고 '태평양전쟁의 슈퍼마켓'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해양 진출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대비해 오키나와 주둔 미군 4700명을 최근 괌으로 이전용로 한 것도 괌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괌

푸른 바다와 야자수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아산비치에는 어뢰정과 해안가의 토치카 및 기념탑 등이 취재팀을 맞이했다. 미군은 아산비치로 상륙한 후 아산의 고지대로 진격했다. 아산의 고지대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 해군 최고지휘관인 니미츠제독의 이름을 따 니미츠언덕(Nimitz Hill)이라 불린다. 이곳은 상륙지점인 아산비치 등을 조망할 수 있도록 아산전망대가 설치됐다.

미국 연방정부에 의해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된 아산전망대에는 상륙전 당시를 설명하는 사진패널과 공격-점령-해방을 묘사한 부조 등 시설물이 있다. 국립역사공원이라고 해서 대규모 시설을 연상하기 쉬우나 자연적인 지형을 살린 채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시설물만을 조성해 놓았다. 이 점은 역시 국립역사공원인 아산비치도 마찬가지다.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인 아산 비치에 전시중인 어뢰.

아가포인트, 가안포인트 등 미군의 상륙지점을 중심으로 한 주요 격전지는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역사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전쟁유적을 설명하는 NPO단체 해설사들이 상주하고 있어 관광객들을 안내한다. 아산전망대는 괌을 찾는 일본인들의 주요 관광루트가 됐다.

제주도의 전쟁유적들이 대부분 무관심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일제에 의해 이 섬에 끌려와 강제노역하고 희생당한 한국인들의 실태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괌에서 자꾸만 제주도의 역사와 현실이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괌의 아픈 역사는 우리와 무관치 않은 역사다.

[괌은 어떤 섬?]

괌은 태평양 북서부 미크로네시아에 자리한 마리아나제도의 15개 화산섬 중에서 가장 크다. 남북 약 48km, 동서 7~13km 정도로 총 면적은 549㎢이다. 제주도의 3분의 1 정도 크기로 인구는 약 17만8000명이다. 원주민인 차모르인이 약 40%, 미군 및 관계자 15%, 나머지는 필리핀 등 기타 이주자로 구성된다. 북부가 평탄한데 비해 남부는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포루투갈 태생의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 괌의 우마탁 해안에 첫 기항했다고 한다. 이후 1565년 스페인 탐험가 레가스피가 우마탁에 상륙하고, 그해 스페인국왕 펠리페2세의 명령에 따라 괌을 포함한 마리아나를 스페인 영토로 삼았다. 1898년에는 괌을 둘러싼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이후 미국령이 된다.

이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1941년 12월 10일 이 섬을 점령 3년 반 정도를 지배하다가 1945년 7월 미국이 탈환하면서 미국의 영토로서 준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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