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서관을 끼고 산지천을 따라 조성된 '청소년의 길'은 주변의 수운근린공원을 포함해 여유있는 녹지공간과 단독주택들이 밀집돼 있어 아늑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 굽이굽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산지천은 '기적의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할 건축가 정기용의 작품이다. '건축업자의 하수인'임을 거부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탐라국 건국의 중심인 삼성혈과 시민들의 삶의 현장인 보성시장을 거쳐 1960년대 제주도심의 거의 유일한 데이트 코스였던 삼성로의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면 산지천은 기산아파트 서쪽으로 흐른다. 이 지점에서 산지천은 갑자기 깊은 계곡을 이루며 바닥의 바위들과 양 옆의 울창한 숲이 도로 살아나면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조금 더 내려가자 남수각이 있던 자리와 제주읍성의 성곽이 남아있는 오현단이 나타난다. ▲역사와 풍광이 어우러진 산지천. 한짓골 서쪽의 골목길에는 도심 속 초가가 의연하게 버티고 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조선시대 마을의 어른들이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던 '향사당', 해방공간에서 '제주도 민주주의민족전선'과 4·3 당시 악명높던 '서북청년회 제주지부'가 결성됐던 조일구락부, 1908년 제주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래된 성내교회, 1958년 관덕정 서쪽에 건축된 옛 제주시청사에 이르기까지 300여년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제주시의 원도심은 서울의 북촌을 연상시킨다. 산업화 시대에 북촌의 좁은 골목길과 낡은 한옥들은 마치 두루마기에 갓을 쓴 유학자를 빌딩 숲에서 만나는 것 만큼이나 생뚱맞았다. 하지만 500년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 당시 삶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북촌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의 북촌처럼 제주의 역사와 삶의 흔적에다 자연의 풍광까지 갖춘 제주의 원도심은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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