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 튀는 논술학교
[JDC와함께하는톡톡튀는 논술학교](7)제2회 실전 모의논술 경시대회-고교 인문·사회 논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2. 07.12. 00:00:00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흑인폭동'.

※ 다음 제시문들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거실 테이블 위에 함께 놓여 있는 전통 수공예품과 아방가르드 미술의 카탈로그, 청량음료와 스포츠카를 고대 역사 유물의 배경에 뒤섞어 놓은 콜라주 광고물,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을 대비시키는 이분법의 틀은 더 이상 작동할 여지가 없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외래문화와 토속문화의 상이한 층위도 기존에 우리가 기대해왔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지닌다. 이러한 구분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전 지구화가 급속히 진전되며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되고 인적, 물적 교류가 급격히 증가하자, 문화 개념을 둘러싸고 몇 가지 상충하는 견해들이 등장했다. 첫째는 문화 접촉이 증가함에 따라 문화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나아가 문화 간 갈등이 증폭되어 결국에는 서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둘째는 초국적 기업의 전지구적 활동을 지적하며, 문화 간의 차이가 줄어들고 동질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 통합되리라고 보는 시각이다. 셋째는 혼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관점이다.

원래 생물학에서 유래된 혼종이라는 용어는 제국주의 팽창에 따른 인종 간의 섞임, 즉 혼혈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다. 유럽인이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우생학적 학설을 토대로, 혼혈인은 열등한 인종보다 더 열등하다고 인식되기도 했던 것이다. 서양의 제국주의가 팽창한 19세기가 겉으로 보기에 인본주의를 토대로 한 계몽의 시대였지만 내면적으로는 혈통에 따른 정치사회적 구별짓기가 뚜렷했던 시대였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후 식민 지배가 종결되고 많은 나라들이 독립한 뒤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혼종에 대한 이해도 점차 바뀌어, 정체성과 문화에 끼친 혼종의 영향력이 주목받게 되었다.

사실 혼종이라는 현상 자체는 이전에도 늘 존재해 왔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만남이 빈번했던 지중해 지역에서 일어난 고대 그리스 문명,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새로운 문화 등을 문화적 혼종 현상의 역사적 예로 볼 수 있다. 개별적인 형식으로 존재했던 분리된 구조나 행위가 뒤섞여 새로운 구조나 행위를 창조하는 사회문화적 과정을 혼종화라고 한다면, 혼종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문화의 지속적인 조건으로 이해된다. 섞임이 없이 순수한 문화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분리된 구조로 보이는 문화라 할지라도 이미 혼종화의 결과이므로 따지고 보면 어떤 문화도 순수한 기원으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다. 이러저러한 역사적 조건 가운데 오랜 시간 단일한 문화인 것처럼 발전되어 오면서 그 문화에 섞여 들어와 있는 다른 문화요소들의 존재를 변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일 뿐이다. (중략)

이처럼 혼종 현상은 문화 전반에 존재해 왔으나 혼종성이라는 개념으로 문화를 이해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혼종성 개념을 어떤 이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융합 현상을 이해하는 틀로, 또 어떤 이는 전 지구화의 과정 속에서 지역문화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인종 간의 접촉과 탈식민화를 이해하는 틀로 인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혼종성은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내면서 식민 종주국과 피식민국 양자에 존재하는 본질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다시 말해, 자기동일성의 확장이라는 식민 지배 측의 환상뿐만 아니라 토착성의 보존이라는 피식민지 측의 환상도 함께 깨뜨림으로써, 지배 문화에 일방적으로 병합되거나 편입, 동화될 가능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피지배국의 자민족중심주의 문화도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나아가 혼종성의 개념은 정체성, 차이, 불평등과 같은 주제들이나 전통과 근대, 빈국과 부국, 지역과 세계 같은 대립 항들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혼종성은 문화 주체의 복합적 정체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익숙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 새로운 문화공동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천적 개념으로 매우 유용하다. 상이한 문화의 갈등 없는 공존이라는 이상(理想)을 지향하는 다문화주의와는 달리, 혼종성 담론은 상이한 문화의 혼합을 통해 제3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가는 데에 높은 가치를 둔다.

그런데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나타난 결과물들이 항상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종교배를 통해 식물의 번식력과 저항력을 높여 영양가와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의 경우 힘은 좋아지지만 생식이 불가능해진다는 예를 들어 혼종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혼종성이 인종적 우월주의의 기반인 본질주의를 해체하는 힘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인종적 순수성이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소속감이나 자존심을 부여하는 무시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 집단 간의 현실적 힘이 비대칭적일 경우 이들 사이의 혼합으로 생산된 문화 산물은 해석과 소통의 수단을 독점하는 지배적 문화 집단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지구적 영향력을 지니는 할리우드 대중문화가 문화상품 시장의 확장과 포섭이라는 전략에 의해 특정한 지역문화를 빌려서 혼종을 만들어내는 경우, 이를 반드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 늘상 나를 황홀경으로 몰고 가는 한 시기가 있다. 그것은 유럽 문화의 바탕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도 아니고, 이백, 두보, 한유, 유종원이 각기 문재(文才)를 뽐내며 세련된 귀족적ㆍ국제적 문화를 꽃피웠던 중국 당대(唐代)도 아니고, 천재와 완전인(完全人)의 시절이라고 할 만한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도 아니고, 서양 르네상스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영정조 치하 실학의 전성기도 아니다. 그런 돌출한 문화적 개화(開花)들도 어느 정도 내 마음을 뛰게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내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난학(蘭學: 네덜란드 문헌들을 통한 서양 학술 연구)과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다. 에도 시대의 난학과 메이지 시대의 번역 열풍이야말로 한문 문명권과 그리스 로마 문명권을 융화시키며 동서 문화 교섭의 가장 빛나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스키타 겐파쿠 등이 네덜란드어 해부학서를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제목으로 번역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시작된 난학은 의학에서 화학, 물리학, 천문학, 군사학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당시 동아시아는 지구 위에서 유럽인들의 발길이 뜸한 유일한 지역이었다. 일본인들의 뛰어남은 유럽 문화의 전 지구화를 마무리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렸다는 데에 있다.

일본과 서양의 본격적인 문화적 접촉은 18세기에 들어 막부(幕府)의 명령으로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 네덜란드어 사전을 편찬함으로써 개막됐다. 막부가 있던 에도의 난학자들이 나가사키 통역사들의 도움을 받아 개화시킨 난학의 요체는 번역이었다. 이들의 번역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예컨대 영한사전이나 불한사전을 편찬하는 한국의 사전 편찬자들에게는 영일사전이나 불일사전과 같은 준거 틀이 있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통역사들이나 에도의 난학자들에게는 그런 준거 틀이 없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의 한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하기 위해, 그 단어의 어원, 변천과정, 당시의 쓰임새 등 전 역사를 조사한 뒤, 그에 상응한다고 판단된 한자들을 골라내 이를 조립해야 했다. 번역 대상이 네덜란드어로 된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 자체가 다른 유럽어의 번역본인 경우도 있었으므로, 통역사들이나 난학자들은 어설프게나마 유럽의 다른 언어들과 그리스어, 라틴어 등의 고전어에까지 기웃거려야 했다. 일본이나 동아시아에 비슷한 개념의 어휘들이 있을 경우엔 문제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들이 옮기려고 한 네덜란드어 단어들 가운데는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에는 낯선 개념들이 태반이었으므로 그들의 고생은 더 컸다. 그것은 극도의 열정과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고, 통역사들과 난학자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어로 번역된 유럽의 어휘들은 그 대부분이 한자를 매개로 해 한국어 어휘에 흡수되었고, 또 그 상당량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으로 역수출되었다. 예컨대 이성(理性), 철학(哲學), 사회(社會), 전통(傳統), 종교(宗敎), 현실(現實) 등의 단어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단어들인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독자적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언어체계 속에 녹여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자어화된 서양의 문화를 빌려 쓰는 길을 걸었고,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신조어들은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 즉각 한국어에 흡수됨으로써 한국어의 어휘를 배가시켰다.

(다)

엎드려 아룁니다. 자질이 부족하고 배운 것도 별로 없는 신이 성은을 입고도 감히 소장(疏章)을 바치는 것이 매우 외람된 일인 줄은 잘 압니다만, 구구하게 올리는 말씀은 모두 나라를 걱정하는 소신의 심혈에서 나온 것이오니 부디 밝게 살펴 주소서.

서양의 풍기를 쓸어내는 일이 시급합니다. 서양의 사술(邪術)은 비상(砒霜)이나 짐새의 독과 같

아서 한번 입에 가까이하면 오장이 파열되고 온몸의 맥이 들끓어 다시는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서양 오랑캐들이 사람들 사이에 하루를 섞여 있으면 하루의 화가 있고, 이틀을 섞여 있으면 이틀의 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십 수 년 이래로 세도(世道)가 날로 어두워지고 정형(政刑)이 날로 해이해져서 괴상한 모양의 선박들이 강해(江海) 주변을 왕래하는데도 관리들이 검문하지 않고, 도깨비 같은 자들이 계곡 사이에 몰려 있는데도 관리들이 잡아들이지 않은 채 날이 가고 달이 바뀌니, 그 무리가 점점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험난한 길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온 이유는 물화를 교역하여 생계로 삼고 이를 통해 장차 우리를 유인하여 교류의 계제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저들이 들여오는 물건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두 기괴한 기술로 마음을 현혹하고 풍속을 해치는 도구일 뿐, 민생의 일용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저들의 음식을 먹고 저들의 옷을 입으며 저들의 물건을 사용하면서 저들의 학술과 문화는 끊고자 한다면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 서양 물건은 저들이 공납(貢納)한다 해도 받아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우리 백성들의 의식(衣食)의 자원을 몰래 끌어다가 서양 물건들과 바꿔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백성은 오랫동안 순박한 풍속을 지키며 전통을 보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서양 오랑캐들이 이처럼 제멋대로 왕래하고 물건을 팔며 민간에 섞여 거처하게 된 이래, 온 백성이 곤궁해지고 나라는 나라가 아니게 되었으며 예의의 민족이 재화와 여색에 달려들게 되었습니다. 서양 오랑캐는 사람 꼴을 한 금수(禽獸)입니다. 그들은 부자, 군신, 부부, 장유의 질서와 예악, 문물, 절의, 복식의 융성함을 등에 박힌 가시나 눈에 생긴 못처럼 여깁니다. 우리가 쇠약해진 틈을 타서 방자하게 호령하기를, ‘어찌 너희의 거추장스러운 복식을 버리고 남녀 상하의 구분을 없애서 우리의 간편함을 따르지 않느냐’고 합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우리 백성들도 점차 예의와 염치를 버리고 문란하게 휩쓸려 저들의 문화에 부화뇌동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저들이 우리를 돼지로 길러 거세해도 성낼 줄 모르고, 소로 길러 코를 뚫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될 것이니, 천성이 바뀌어 관습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러고서 어찌 온 천하가 금수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하루속히 엄중한 금령을 선포하여, 지금 이후로는 서양 물건을 집에서 쓰거나 저자에서 파는 자는 모두 중벌을 받게 하여서 저들의 문화가 전파되는 길을 끊고 민생의 근본을 넉넉하게 하소서. 애군우국(愛君憂國)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하여 성명(聖明)에 힘입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통촉하소서.

(라)

“오빠와 전화하는 거 들었어요.” / 카밀이 포도주잔을 들며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이라니, 그게 뭐예요”

“백인들이 흑인들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일어난 폭동이었어. 아버지가 그때 입은 총상

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막내오빤 총을 맞고 죽었지. 끔찍한 일이었어. 아까 카밀에게 왔다간 둘째오빠, 그 상처 때문에 무조건 외국인이라면 싫어해. 막내오빠에게 총을 쏜 것은 흑인이 아니라 남미계였거든. 말은 흑인폭동이라고들 하지만 흑인만 폭동을 일으킨 게 아냐. 남미계통 사람들이 오히려 흑인보다 더 거칠었으니까. 미국은 그런 나라야. 알고 보면 인종폭동 수없이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구.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니 계속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말이야 좋지, 기회의 나라라구. 이민을 갔던 아버지의 꿈도 그랬어. 열심히 살면 열심히 산 만큼 정직하게 보상받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기회의 나라에서 한번 성공해보자고. 하지만 어림도 없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백인들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야. 백인들이 우선 인정 안 해. 카밀은 내가 말하는 거 금방 알아들을 거라고 봐. 카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기 한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생각하니까. 미국사회에 사는 흑인, 아시안들, 멕시칸 다 그래. 그들은 대대로 억압받고 살았으니 우선 가난해. 가난이 대를 물리니 배우지도 못하고, 못 배웠으니 밑바닥 일을 전전하게 돼. 그럼 백인들에게 더 무시받고 더 천대받고, 악순환이야. 대를 물려서 그렇게 살아봐. 폭동이 일어나지 않고 배기겠어”

“알아요. 충분히 알아들어요.” / 포도주잔을 단숨에 비우고 카밀이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것이 아니라 왜 흑인과 다른 소수민족이 한국 사람들을 공격했냐 그거에

요. 같은 소수민족이잖아요” / “그것은…….” / 나는 말을 멈추었다.

(중략)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잘못이 있었어.” / 나는 간결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흑인지역으로 많이 들어간 건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고 봐. 원래 유대인들이 흑인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자꾸 흑인폭동이 일어나고 하니까 돈 번 유대인들이 떠나고, 흑인들은 그 가게를 인수할 여력이 없고, 그럴 때 우리나라 교포들이 싼값에 가게를 인수해 흑인지역으로 자꾸 들어간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 돈 버는 일엔 용감하잖아. 근데 문제는 돈 벌 욕심만 앞섰지, 가난한 흑인이나 중남미계 사람들하고 친구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야. 부자 되면 더럽고 무식한 저들을 떠날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니 인색하고 무례해 보일 수밖에 없지. 친구하고 싶은 백인들과는 어떻게 친구로 만들지 모르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흑인들은 계속 돈벌이 때문에 상종하고 살아야 하니, 피차 소통이 되겠냐고. 자연히 티격태격하게 되고, 사건도 생기고 그러는 거지.”

“네. 누나 말 이해할 수 있어요.”

“흑인들은 게을러. 아버지도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 저놈들 못사는 거 자업자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눈에 불 켜고 열심히 살아봐라, 왜 못살겠냐.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흑인들 너무 게으르고 더럽고 부정직하고, 그래서 싫더라구. 그러나, 그건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일 뿐야. 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웃기는 소리라고 생각할 거야. 왜냐면 그들은 대를 물려 살면서 열심히 일한 적도 많이 있었으니까. 오랜 시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열심히 일해봤자 백인의 벽을 뚫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는 거지. 그들은 말하자면 그들의 조국인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생각 안 해. 미국은 백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자기들을 착취하거나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야. 아버진 그 점을 몰랐던 거야. 예전의 나도 그랬고. 이민간 한국 사람은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무조건 믿거든. 기회는 희망이야. 미국은 희망의 나라, 자유와 평등의 나라, 그렇게 믿어봐. 열심히 일하게 되지.”

아버지의 임종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흑인폭동에서 받았던 가장 큰 상처는 가슴 한편을 관통한 총상이 아니었다. 당신의 모

든 것인 마켓을 지키고자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총을 들고 폭도들과 싸운 것은 아버지로선 어쩔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마켓 지붕 위에 올라가 폭도들과 맞서 싸웠고, 아버지가 지붕에 엎드려 총을 쏘는 장면을 누가 촬영했는지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됐다.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미국인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오히려 범법자 취급을 받았다. 이런 식의 편견은 언론뿐 아니라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상처받았다. 주방위군이 폭동의 현장에 투입된 것은 악몽 같은 밤이 다 지나가고 나서였다. 만약 백인지역에서 그런 일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수수방관 수천 개의 가게들이 약탈 방화되는 걸 정부가 보고만 있었겠는가.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다. 당신이 자유와 평등의 이상적 법치국가라고 믿었던 미국이 정작 당신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자가 되어주지 않았던 사실을 아버지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흑인들을 두둔하며 한국인들을 부정적으로 몰아치는 데 급급했다. 흑인들의 돌팔매가 백인들에게 날아올까봐 본능적으로 아시안계 한국인들을 방패막이 삼고자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총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것도 알고 보면 당신이 믿었던 미국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 해 가을에 죽었다. 총상을 입고 주로 병원에서 보낸 6개월 사이, 아버지는 40킬로그램까지 몸무게가 빠졌고, 시력을 잃었으며, 하회탈처럼 주름살투성이로 급격히 늙었다. 더욱 억울하고 분한 것은 막내오빠의 죽음까지도 폭동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순강도 사망 사건으로 처리된 것이었다. 작은오빠가 총격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진술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인명피해 규모를 되도록 줄일 필요가 있었던 경찰은 작은오빠의 진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고통은 그것으로 더욱 더 깊어졌다.

무섭다. 한국으로 가자. 병원에서 깨어난 아버지가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마)

매 기(期)에 ‘문화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문화 현상을 생성하고 이로부터 사회문화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를 가정하자. 이 사회에는 기존 문화요소가 m단위 존재하고 있었는데, 외부로부터 신규문화요소가 n단위 유입되었다. (m과 n은 0보다 큰 짝수이고, n은 m보다 작다.) 이제 이 사회에서는 m+n단위의 문화요소들이 각각 무작위로 일대일 결합하여 사회문화 가치를 창출한다. 기존 문화요소끼리 결합할 경우는 1의 가치가, 신규 문화요소끼리 결합할 경우는 e의 가치가, 그리고 기존 문화요소와 신규 문화요소가 결합하는 문화 간 혼종의 경우는 h의 가치가 창출된다. (e와 h는 0보다 큰 실수이다.)

현재 기(期)에 기존 문화요소의 각 단위가 창출하는 가치의 기댓값이 신규 문화요소의 각 단위가 창출하는 가치의 기댓값보다 크면, 다음 기에 기존 문화요소는 두 단위 증가하고 신규 문화요소는 두 단위 감소한다. 반대의 경우, 신규 문화요소가 두 단위 증가하고 기존 문화요소가 두 단위 감소한다. 두 가지 문화요소들이 창출하는 가치의 기댓값이 동일하면, 사회는 기존 문화요소와 신규 문화요소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안정 상태에 이른다.

(바)

(A)
According to the Judeo-Christian1 theory of human mind, the mind is made up of several parts, present at birth, which include a moral sense, an ability to love, a capacity for reason, and a decision faculty. God implants ideals that correspond to reality in the mind’s faculties. Another influential theory of human mind is the Blank Slate introduced by John Locke. According to this theory, the human mind has no inherent2 structure. Instead, people’s minds are shaped by their experiences with each experience adding something to the originally blank slate. In this way the mind’s functions are determined by society and by individuals themselves. ― Steven Pinker, The Blank Slate ―
1유대-기독교 2타고난/생득적인

(B) The nature versus nurture debate concerns the relative importance of an individual’s innate1

qualities versus personal experiences in determining or causing individual differences in mental and behavioral traits. The chart on the right illustrates three patterns one might see when studying the influence of genes and environment on such traits in individuals. Trait A shows a high sibling correlation,2 but little heritability.3 Trait B shows a high heritability since trait correlation rises sharply with the degree of genetic similarity. Trait C shows that the degree to which individuals display Trait C has little to do with either genes or broadly predictable environmental factors. The traits of an individual are always a complex mixture of both environmental and genetic factors. ― Wikipedia (Nov. 12, 2011) ―
1생득적인/선천적인 2상관관계 3유전 가능성



제Ⅰ유형

☞ 이화여대 인문Ⅰ, 경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동국대, 숭실대 등

【논제 1】제시문 (가)의 논지를 근거로 (나),(다),(라)를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논지를 요약하고 혼종성의 관점에서 비교 설명하시오. (800자 이내)

【논제 2】제시문 (바)의 (A),(B)에서 알 수 있는 공통 논제를 우리말로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라)의 ‘나’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시오. (1,000자 이내)

제Ⅱ유형

☞ 고려대, 한양대 상경계열, 이화여대 인문Ⅱ, 중앙대, 경희대 사회계열 등

【논제 1】제시문 (가)를 요약하시오. (400자 이내)

【논제 2】제시문 (나), (다)는 문화 혼종화의 양상을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다문화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문화현상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600자 내외)

【논제 3】제시문 (가)와 제시문 (다)의 논의에 근거해서, 제시문 (라)의 ‘나’가 생각하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원인에 관해 논하시오.(800자 내외)

【논제 4】제시문 (마)과 관련하여 다음 두 문항에 모두 답하시오.

(가) 이 사회에서 신규 문화요소의 단위 수가 n보다 작아지지 않을 조건을 m,n,h,e 사이의 관계로 표현하시오. 그리고 e가 1?보다 크지 않고 h가 1?보다 작을 때, 신규 문화요소가 사회에 유입되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논하시오.

(나) 이제 m=12, n=2, h=2, e=0.6이라고 가정할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존 문화요소와 신규 문화요소의 단위 수가 어떻게 변할지 분석하고, 이 사회가 안정 상태에 이를 수 있을지 논하시오.

제Ⅲ유형 - 기타 모든 대학

☞ 연세대, 서강대, 한양대 인문, 성균관대, 인하대, 건국대 등

【논제 1】제시문 (가)의 논지를 근거로 (나),(다),(라)를 두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 논지를 요약하고 혼종성의 관점에서 비교 설명하시오. (800자 이내)

【논제 2】오늘날 우리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 다국적 결혼이주여성 문제 등으로 문화적 충돌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논제 1’의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한 가지 입장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1,000자 이내)



※이번회 원고는 제주도교육청과 제주도논술면접교육연구회가 지난 6월 9일 실시한 '톡톡튀는 논술학교' 제2회 실전모의논술 대회 인문·사회 논술 문항입니다. 우수 입상작 등은 다음회에 실립니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