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다른 산 없어 외롭다'서 유래 한라산, 마라도, 문섬 등 한눈에 감상 편백나무숲 향긋함에 절로 무릉도원 제7호 태풍 '카눈'이 제주를 벗어나면서 푸른빛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빛이다. 소나무 끝에 맺힌 물방울이 빛에 반짝이며 순결한 느낌까지 자아낸다. 아직 숲은 촉촉하다. 나무냄새, 흙냄새, 풀냄새가 코와 입을 통해 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오묘하면서도 순결한 향기가 난다. 19일 서귀포시 신시가지의 중심을 잡고 있는 고근산(孤根山·서호동 1268)에 올랐다. 산책로 입구에는 "주위에 산이 없어 '외로운 산'이라는 뜻에서 고근산이라고 불렸다"고 설명이 되어 있지만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일부는 '호근산', '고공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근산은 마을에서 보면 평범한 오름같이 보이지만 정상은 높이 396m의 타원형으로 분화구를 이루고 있다. '실업대책의 일환인 공공근로사업으로 놓여졌다'는 905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정상에 올라서니 신시가지와 월드컵경기장, 범섬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그리고 분화구를 따라 놓인 산책로를 돌아보면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서쪽으로 마라도까지, 동쪽으로는 문섬·섶섬을 지나 지귀도까지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는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정상을 베개삼고 고근산 굼부리(분화구)에 엉덩이를 얹어 앞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물장구를 쳤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남동사면 중턱의 '머흔저리'라고 하는 곳에는 예전에 국상을 당했을 때 곡배하던 곡배단(哭排壇)이 있고, 남서사면 숲비탈에는 꿩사냥하던 '강생이(강아지)'가 떨어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강생이궤(수직동굴)'가 있다. ▲고근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걷기'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하는 이들과 자주 마주치곤 한다. /사진=강경민기자 그래서 고근산에 오르면 고목들이 즐비한 오래된 숲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숲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를 오르다 등줄기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 쯤 눈앞에는 언뜻 삼나무로 보이는 숲길이 자리하고 있다. 그저 삼나무숲이려니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향긋한 편백나무숲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생김새가 비슷해 멀리서 봐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나뭇잎이 부챗살처럼 펴진 것이 편백, 솔방울처럼 뭉친 것이 삼나무로 구분하면 쉽다. 편백나무는 일본에서 190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수입돼 남해안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림수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편백나무 숲에서 산림욕을 할 때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일본 편백나무보다 효과가 더 좋다고 알려지고 있다고 하니 편백나무숲에 들어 잠시 땀을 식히면 이보다 더 향긋할 수 있을까. 고근산에 오르면 '걷기'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하는 이들과 많이 마주한다. 고근산을 오르내리는 이들 중에도 회복과 치유에 고근산이 동행이 되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고근산은 기생화산으로 높지 않으면서도 원형분화구를 가지고 있다. 또 분화구 동·서·남·북 방향으로 서로 다른 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 것도 이채롭다. 분화구에 내려와 중심에서 한바퀴 둘러보면 방향별로 편백나무, 해송, 삼나무, 사스래피나무 등이 빼곡하다. 또 고근산 오름 중턱에 삼나무, 편백나무, 해송, 상수리나무, 밤나무 등이 조림되어 있고 정상 부근에는 자연석과 어우러져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산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드물게 해송이 있는 풀밭오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남쪽으로 모두 달려갈 것만 같은 해송 군락이다. 바람의 영향이 많을 듯 하지만 남쪽을 향해 가지런히 누워있는 해송을 보노라니 서귀포해안을 그리워하는 나무들의 애처로운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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