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보전총회를 맞아 열린 '다문화가족 페스티발' 현장에서 우즈베키스탄관을 운영중인 반올가·김인디라·손이리나씨(사진 왼쪽부터). /사진=김명선기자 반올가·김인디라·손이리나씨 제주 습하고 덥지만 이젠 적응 가족의 힘으로 한국생활 지탱 1863년, 한국인들의 러시아 이주가 시작됐다. 이후 이주민은 17만5000여명까지 늘어났고 1937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스탈린 소수민족에 대한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이 과정에서 1만1000여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는데 러시아에서는 이들을 '까레이스키'라 부른다. 자신들을 '고려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후예가 다시 제주로 결혼 이주해 살고 있다. 최근 세계자연보전총회를 맞아 개최된 '다문화가족 페스티발' 현장에 우즈베키스탄관을 운영한 손이리나(32·10년전 이주)·김인디라(35·10년전 이주)·반올가(37·7년전 이주)씨 등 3명의 결혼이민자를 만났다. 이들은 현재 제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20명 정도가 결혼이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이 제주에서의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은 여름을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손이리나씨는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 여름에 낮 최고 기온이 45℃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제주가 더 덥게 느껴지는 이유는 습도 때문"이라며 "제주는 습도가 너무 높아 적응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고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살기 싫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김인디라씨는 "도민들은 돼지 고기를 다른 지방사람들보다 좋아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먹지 않는다. 이를 가족들한테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올가씨는 "시집온지 얼마안돼 아침상을 차렸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밥상을 보고 놀랬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먹던데로 빵과 우유를 상에 올렸기 때문"이라며 "다음에는 볶음밥을 올렸는데 이때도 표정이 비슷했다. 고향에서는 볶음밥을 기름밥이라고 하는데 한국보다 기름이 몇배나 많이 들어간다"고 웃음지었다. 이들의 한국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의 힘이다. 저마다 꿈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힘든 일이 있어도 이들의 강인한 생활력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我们也是济州人] 来自乌兹别克斯坦的三剑客 "我们是高丽人-有着坚强的生活力" 班兀佳, 金因迪拉, 孙伊利娜-济州又热又潮,如今已经适应。 韩国人从1863年开始移居俄罗斯,移住民达到了17,5万名。从1937年9月到10月未,斯大林将少数民族被强行迁移到中亚,在这过程中有1,1万人死亡。俄罗斯称迁移到中亚的韩国人为"корейский",是高丽人的意思。 生活在中亚的韩国人,自称为"高丽人",如今他们的后代以国际结婚的形式嫁到济州,生活在济州。为迎接济州世界自然保护大会,在新山公园举办了"多文化家庭庆典",一共展现了14个国家的文化及小吃,其中也包括了乌兹别克斯坦,在这里遇到了孙伊利娜(32岁,来韩国10年),金因迪拉(35岁,来韩国10年)班兀佳(37岁,来韩国7年),她们是嫁到济州的"高丽人"的后裔。 他们说现在济州有20多名结婚移民者,家庭都很美满。还说济州的夏天最难熬。 孙伊利娜说:"我的故乡乌兹别克斯坦夏天时的最高温度达到45℃,但是觉得济州更热,原因在于济州湿度大。刚来到济州时很不适应,所以当时很讨厌夏天。" 金因迪拉说:"济州人喜欢吃猪肉,而乌兹别克斯坦不吃猪肉,为了让家人了解这个习俗,费了很大的功夫。" 班兀佳笑着说:"来济州不久,做了早餐,桌上摆了面包和牛奶,丈夫和公婆看得目瞪口呆。第二次上了炒饭,也是同样的表情。因为乌兹别克斯坦称炒饭为油饭,添加的油量比韩国多几倍。" 她们说能在济州好好生活,是因为有了家人的帮助和鼓励。她们都怀着梦想经营着温馨的家庭,她们坚强的生活力,也必定能够战胜以后人生路途中的种种艰辛。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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