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삶이 악연으로 시작됐으나 이제는 또다른 사업을 구상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박헌웅씨. 강희만기자 주유소 사업에 손댔다 '깡통신세' 제주 정착 인생 2막 연지 23년째 "즐기며 살 수 있는 제주가 좋아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제주도 때문에 모든 걸 잃었다. 제주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이처럼 악연에서부터 시작됐다.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서 통나무 펜션 '헌스캐빈'을 운영하는 박헌웅(56)씨. 부산이 고향인 그가 제주에 정착해 인생 2막을 연 지 23년째다. 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해왔던 그. 제주에 정착하기 전까지 전국을 무대삼아 다양한 사업을 벌일만큼 욕심이 대단했다. 엔지니어로 일을 하다 신발공장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태권도 지도자로 체육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용품을 개발해 특허출원도 해봤다. 이런 그에게 제주에서 주유소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1989년 그는 행정관청에 문의한 끝에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구두 답변을 얻고 주유소 건물 설계를 맡기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당시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에 반한 그는 주유소 사업과 함께 아예 정착할 요량으로 집도 짓기로 했다. 그런데 2주후 설계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경관문제로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군청에 항의하다 행정소송까지 벌이게 됐고, 2년 9개월간의 법적다툼 끝에 모든걸 잃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벌어놓은 사업밑천과 경매로 땅까지 날리는 등 깡통찬 신세가 된 것이다. 그가 꿈꿔왔던 핑크빛 미래가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을 비참한 신세로 전락시킨 이 제주에서 말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던 터라 빚을 얻어 제주시내에 사무소를 차렸죠. 부동산 중개일을 10여년간 하면서 갖은 고생을 했죠."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졌을 즈음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일 때 지인이 펜션업을 추천했다. 1년여의 공사끝에 애월읍 소길리에 통나무 펜션을 오픈하게 됐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사실 친구들 말만 믿고 시작했죠. 처음에는 운영이 쉽지 않았죠. 전기나 수도 등 기본시설 때문에 행정 문턱을 불이나케 드나들었는데, 행정관청만 믿고 있을 수만도 없었어요. 손님 한사람이라도 더 받기 위해 웬만한 것은 내손으로 직접 시설하기도 했죠." 몇년을 고생했다. 조경도 직접 하고 뜯어 고치길 반복했다. 살던 집도 처분해 펜션에 모두 쏟아부었다. 너무 힘들어 다 털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003년부터 펜션을 운영했으니 벌써 10년이 흘렀다. 악연으로 시작한 제주에서의 삶이 이제는 행복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나 잠들기 전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 밑바닥에서 이만큼 재기한 것도 그렇지만,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제주라는 환경이 아주 좋아요. 육지처럼 바쁘지 않고 여유가 있죠. 운동이나 등산이나 시간이 있고 의지만 있다면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그는 또 다른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펜션만 갖고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50대, 60대가 늙은 나이가 아니잖아요. 일을 하지 않고 비생산적으로 사는 것은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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