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에 전설 속의 흰 노루가 나타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백록(白鹿)을 탄 신선이 사슴 떼를 몰고 와서 물을 먹인다는 이 전설의 동물은 노루가 아니라 사슴이다. 사실 사료를 보면 과거 제주도에는 노루보다 사슴이 훨씬 더 많았다. 이형상 제주목사가 1702년 진상을 위해 사냥하는 장면을 남긴 탐라순력도 중 '교래대렵'에는 사슴 177마리와 노루 101마리 등을 잡은 기록이 있다. 백록 전설이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된 자료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 임제(林悌)는 1577년 과거에 급제하고 제주목사로 있던 아버지 임진을 만나기 위해 제주에 왔다가 기행문 '남명소승'을 남겨놓았다. 칼을 찬 문인으로 많은 기행을 남긴 그는 제주의 기이한 풍경과 이야기들을 자세히 전하는데, 백발 노옹이 탄 백록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사슴이 없어진 지금은 노루가 그 자리를 대신할 만하다. 최근 한라산국립공원 직원들 사이에서 오가던 흰 노루 소문은 대통령 후보를 지낸 문재인 의원이 지난달 가족과 함께 백록담에 올랐다가 목격하고 나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직원들 중에서도 몇몇만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는 이 흰 노루를 문 의원이 백록담 정상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백록 전설과 전 대통령 후보라는 절묘한 조합으로 소문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후 한 직원의 카메라에 포착된 흰 노루는 신비스러운 자태를 뿜어냈다.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로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용한 장소마케팅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1920년대 베로나시청 한 공무원이 '카펠로(Capello)' 가문 소유의 저택을 보고 소설 속 줄리엣 집안인 '캐풀릿(Capulets)'과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해 '사랑'을 테마로 한 '줄리엣의 집'을 탄생시킨 이후 '허구'는 '신화'를 창출해냈다. 스토리텔링은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흰 노루라는 훌륭한 소재가 있다. <표성준 문화체육부 차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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