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고는 의료사고보다 진상규명이 더 어렵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 화산동 일원에서 시행 중이던 '화성태안3택지개발사업'과 '1번국도 우회도로사업'은 문화재인 만년제를 침범한 상태에서 사업승인을 잘못 받아 수천억 원의 세금을 낭비하며 10년을 넘겼다. 역사학자들과 문화재 관련 종사자들이 만년제의 위치를 착각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책임자들은 지금껏 진상을 은폐하고 있다. 저자는 만년제 현장과 역사자료를 퍼즐처럼 맞춰 사도세자의 연못 만년제를 농업용 저수지로 착각한 것이 사고의 발단이었음을 증명한다. '중앙에 등근 섬이 있는 네모난 인공 연못' 만년제는 조선특유의 연못양식이며 조선개국과 함께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그는 정조가 물이 있는 지역 만년제(萬年堤)·만석거(萬石渠)·만안제(萬安堤)·축만제(祝萬堤) 등에 만(萬)자를 넣어 작명한 것은 자신의 호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도로교통 및 농업기반 조성과도 공통점이 있다고 해석한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외적의 침략속도를 지연시키기 위해 '치도 병가지대기(治道兵家之大忌·길을 고쳐 닦는 일은 병가가 크게 꺼려야 함)'를 국방전략으로 채택했다. 저자는 정조가 그 같은 관행을 타파하고 도로 건설에 착수한 것을 혁명적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농업과 관련해서도 정조가 축조한 만석거·만년제·축만제 등은 현대적인 개념의 경지정리사업이 포함된 만(萬)자 농업혁명지로, 화성성역을 계기로 향상된 기술력을 농업현장에 접목시킴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부록 편에서는 만년제의 문화재 지정 및 관리의 난맥상과 함께 만년제 때문에 발생한 화성태안3지구 사고의 전말을 파헤쳤다. 특히 인근사찰 용주사가 개입해 국가사업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가리켜 천성산·사패산 사태 등과 함께 불교의 3대 떼쓰기로 규정하고 사이비 문화재보호주의자들의 억지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경고했다. 저자는 역사학자도 작가도 아니고 '만년제'라는 문화재 주변에 사는 평범한 주민이다. 그는 6년간의 끈질긴 연구와 추적 끝에 만년제의 역사적 진실과 사고의 진상을 파헤쳤다. 그 과정에서 시종일관 기성권위에 불복하며 도발적으로 만년제와 정조시대를 재해석한다. 지금 문화재를 정비하고 앞으로도 계획 중인 행정과 역사학계에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주찬범 지음. 신성북스. 95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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