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경제 엘리트층은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세력이 약화되면서 한동안 근신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편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마비됐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양 대륙의 중산층은 전후 30년간 유례없는 번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광의 30년이 끝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마침내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설욕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들은 자유주의 이론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티나(TINA)'라는 수사학적 무기를 꺼내들었다. 티나는 대처리즘의 결정체인 이른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였다. 그것은 소수에 불과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 무기였다. 신흥 기득 세력이 '대안은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숙의 과정도, 민주적 의견 교류도 모두 무대에서 퇴장당했다. 자유주의 세력은 "우리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든 지식인 기득 세력과 언론 매체들까지 티나를 외쳐대며 시장중심주의에 대한 대안 찾기를 거부했다. 어느새 티나가 자명한 진실로 둔갑해 버리자 자본주의, 시장, 세계화, 금융 탈규제, 임금 삭감, 해외 이전, 사회보장 축소 등 그 어느 것에도 대안은 없었다. 전 서구 사회가 티나 이데올로기에 감염돼 다수는 계급이 추락했지만, 소수는 막대한 이윤으로 배를 불렸다. 이렇게 형성된 과두지배세력이 권력을 탈취했지만 2000년대 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과두세력의 재산과 부가 위험에 빠졌다. 돌연 국가의 온갖 미덕이 다시 칭송받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국가를 비난하던 이들이 국가를 되살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다른 대안은 없었고, 은행을 살려야만 했다. 카지노 경제가 입은 막대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이번에도 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코 묻은 돈이 뜯겨 나갔다. 이 책이 비판하는 대상은 신자유주의 그 자체도 아니고, 대처와 레이건은 더더욱 아니다. 책이 겨누는 곳은 자크 아탈리와 알랭 맹크, 토니 블레어, 제2좌파, 피에르 로장발롱 등 이른바 티나를 외치며 시장중심주의에 대한 대안 찾기를 거부해 온 모든 지식인 기득 세력이다. 전 세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위기의 시대에 짚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허보미 옮김. 함께읽는책. 1만3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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