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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만리 제주밭담
[흑룡만리 제주밭담](8)밭담 길이
지구 반 바퀴 2만2000km, 제주섬 수놓다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3. 07.31. 00:00:00
고려 중기 재산권 다툼 방지 경계용 밭담 쌓으면서 확산
소·말 방목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예방 차원서 형성되기도

농업환경 변화 등으로 훼손 심각… 전수조사 필요성 제기


제주밭담은 화산섬의 땅덩이를 잘게 쪼개며 구불구불 흐른다. 검은 현무암 물결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제주 전역으로 이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 하여 예부터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불렸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이를 상징하는 '만리'는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묵직한 섬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되짚게 한다.

▶무수한 시간의 흔적=제주도 전역을 잇는 밭담은 제주농업의 시작과 때를 같이 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돼 왔다. 화산섬 제주에서 밭을 일구려면 돌을 골라내 쌓는 과정이 필수였다. 그러나 밭담이 지금처럼 도 전역으로 확산된 시기는 고려 고종 21년(1234년)으로 추정된다. 제주판관 김구가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경계용 밭담을 쌓기 시작한 것이 밭담 형성과정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강성기 월랑초 교사는 "판관 김구의 지시에 따라 경계용으로 돌을 쌓기 시작한 게 밭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며 "경계용으로 쌓기 시작한 게 방풍, 방축 등 다양한 기능을 획득하며 오늘날처럼 제주지역 전체에 형성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밭담은 섬의 해안은 물론 중산간 지대까지 끊이지 않고 흐른다. 지역 전체를 수놓을 만큼의 상당한 규모는 목축문화와도 연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나라에 의해 제주가 본격적인 목축지대로 변하게 된 것은 13세기 이후. 제주도의 경우 육지부와 달리 소와 말을 목장이나 들에 풀어놓고 길렀기 때문에 중산간 지대 인근 경작지에는 우마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담을 쌓아야 했다.

박경훈 소장은 "고려시대에는 제주 동쪽과 서쪽 지역에 목장이 운영됐지만 조선시대에는 10개의 국영목장이 제주 섬 주변을 감싸는 형태가 됐다"며 "그 과정에서 밭담이 도 전역을 빙 두르는 규모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지구 반 바퀴=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만큼 밭담의 길이는 대단하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4만여km인 지구의 둘레를 반 바퀴 돌고도 남는 약 2만2000km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껏 제주밭담의 길이를 조사한 것은 2007년 농림부에서 시행한 농림기술개발사업인 '제주도 농촌지역내 돌담 문화자원의 활용을 위한 농촌 경관보전 직불제 도입방안에 관한 연구'가 유일하다. 고성보 제주대학교 교수가 총괄연구책임을 맡아 진행한 것이다.

당시 고 교수 연구팀은 제주지역의 밭담의 형태, 밀도, 밭작물의 종류 등을 감안해 제주시 지역 신촌, 한경, 애월, 한림, 구좌, 조천 등 6개 지역, 서귀포시 지역은 남원, 대정, 성산 등 3개 지역 등 총 9개 지역을 선택해 밭담의 현황과 보전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제주도 돌담의 총길이는 3만6355km, 그 중 밭담의 길이는 2만2108km로 돌담의 약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촌, 고산, 대정, 애월, 성산, 남원 등 6개 지역을 표본으로 조사한 1㎢ 범위 내의 평균 돌담 길이인 40.796km를 제주도 총면적과 경지면적을 감안해 산출한 수치다.

▶밭담 길이 등 체계적 조사 필요=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로 밭담의 길이를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정효 제주대 강사는 지난 3월 제주돌담밭 국가농업유산지정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2007년 연구 당시 추산된 밭담 길이 2만2108km는 이미 경지 정리가 이뤄져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된 지역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일주도로 변이어서 엄청난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 환경 변화와 도시화 등으로 인해 해가 다르게 밭담의 훼손율이 높아지는 것을 고려하면 이전의 조사결과와 현재 상황이 다를 것이라는 것을 어림잡아 헤아릴 수 있다. 고 교수팀이 2007년 사례지역의 돌담 훼손율을 추정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돌담 훼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경 경관구역은 2001년 100m 근경 내 밭담의 총길이가 1만2462m였지만 2005년 실측에 따르면 8650m로 3000m 이상이 감소돼 4년 동안 30% 이상의 밭담이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제주밭담을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 인식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문화 자원인 밭담을 보전하기 위해선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돼야 하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제주밭담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상황이기에 '추정이 아닌 전수 조사를 통해 정확한 길이를 측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제주자치도는 오는 8월부터 연말까지 밭담의 길이, 높이, 특징, 생물종다양성 등을 조사해 나갈 예정이다. 제주 전역의 밭담을 대상으로 조사할 계획이었으나 그 범위가 광대하기 때문에 일단 일부 지역으로 한정해 1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조사 해당지역은 세계자연유산의 핵심지역와 완충지역에 접해있는 밭담이다. 구좌, 성산, 조천 등이 포함되는 곳이다.

강승진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밭담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마련되면 관련 연구와 밭담의 보전·활용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역마다 다른 밭담의 특성을 반영해 보전, 관리, 정비를 체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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