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콜레라가 조선을 초토화시킨다. '순조실록'과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기록했지만 병의 치료법은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병이 돌고 한 달 만에 10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치료법도 알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괴질(怪疾)이었다. 일본에서 1822년 이 병이 처음 유행한 이후 서양식 명칭인 'Cholera'를 음역해 '고레라'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1867년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고레라의 한자 표기 중 '호열랄(虎列剌)'이 공식적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조선이 이 개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성순보' 등의 신문은 당시 열악한 인쇄기술 탓에 '랄(剌)'자가 '자(刺)'자로 읽혔다. 1890년대 이후에는 순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이나 '뎨국신문'에서도 한글로 표기된 '호열자'가 버젓이 등장한다. 개념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개념의 전파와 수용이 지역을 이월하는 가운데 변용과 굴절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조선에서는 서양 의학과 위생 계몽 담론이 소개되면서 대전환의 계기를 맞는다. 1899년 9월 16일에 반포된 '호열자예방규칙'은 콜레라를 세균이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설사, 구토, 근육 뒤틀림의 원인이 병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괴질'은 병인과 치료법을 알 수 없다는 공포감이 반영된 이름이다. 반면 '호열자'에는 병이 설명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는 서양 의학의 우월성과 위생 계몽 담론의 자신감이 반영돼 있다. 저자에 의하면 괴질이 무지와 공포의 시대를 상징한다면, 호열자는 과학의 힘으로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진보의 시대(근대)를 상징한다.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교수인 저자는 병을 소재로 하는 근대의 문학 작품을 통해 병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개념적 단절을 발견한다. 신재효의 판소리 '변강쇠가'는 귀신의 저주가 남녀유별의 가치관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가치관과 연결돼 있다고 진단하고, '심청가'는 안맹의 병인과 치유의 측면에서 연기론, 즉 불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한다. 책은 문집이나 실록, 신문과 잡지, 사전에 나타난 어휘, 한의학 서적이나 서양의 의학과 위생학 텍스트, 민속학 보고서, 교과서, 문학 작품 등의 기록물을 토대로 병의 일상 개념을 추출했다. 그리고 병 개념의 연속과 단절을 기준으로 전근대와 근대를 설정하고, 그 근대성의 의미를 도출했다. 신동원 지음. 돌베개. 2만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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