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제주에 빠지다
[제주愛 빠지다]조형 기술자 김승경씨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 이거다 싶었죠"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3. 10.11. 00:00:00

▲스무살을 넘겨 제주에서 우연한 기회에 조형기술을 배우게 됐다는 김승경씨가 자신이 만드는 작품 앞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강희만기자 photo@ihalla.com

스무살 넘긴 나이 제주서 조형기술 배워
도내 관광지 곳곳에 그가 만든 작품 전시

제주섬 안에서도 세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 각국의 유명 건축물이 전시된 미니어처 박물관을 찾으면, 몇 걸음 옮기는 것만으로도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의 에펠탑 등을 만날 수 있다. 크기는 작지만 실제와 똑같이 재현돼 있는 건물 모형을 보면 누가 어떻게 만든 걸까 하는 호기심이 인다.

김승경(44)씨는 이런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만든 조형물이 제주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니랜드, 소인국테마파크, 선녀와나무꾼 테마공원 등에 전시돼 있는 작품도 그의 손을 거쳤다.

전라남도 목포가 고향인 그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에 제주에 왔다. 조형 기술을 배운 건 그 뒤의 일이다. 호텔, 리조트 등에서 일했던 그에겐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였다.

"리조트 운영자가 정원을 꾸미려고 서울에서 조형 기술자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경영난 때문에 리조트가 문을 닫으면서 사업이 중단됐죠. 그때 그 기술자 분이 저한테 제의를 했어요. 제주에서 함께 일하며 기술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요."

지금에야 미니어처 박물관이 여럿 있지만, 1996년 당시만 해도 생소한 분야였다. 김씨에게도 그랬다. 그런데 큰 건물을 작게 축소해서 똑같이 만들어 놓은 건물 사진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주저 없이 시작했지만 작업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실제 건물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를 보면 화려하고 멋있죠. 그런데 만드는 과정은 그렇지 않아요. 기본적인 틀을 잡고, 건물의 부분 부분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붙여넣어야 하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많이 갑니다. 처음엔 도구를 다루는 게 서툴러 다치는 일도 많았어요."

규모가 큰 조형물은 몇 개월 내내 매달려 작업해야 한다. 3m 높이의 대형 뿔소라 모형은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작업 과정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일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작품을 완성한 뒤에 느끼는 보람은 더할 나위 없단다. 자신이 만든 조형물이 전시된 곳을 돌아볼 때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느낀다. 만들 때 고생깨나 했다는 소라 모형은 제주시 우도면에 전시돼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김씨는 "내가 만든 조형물을 배경으로 도민과 관광객이 사진찍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며 "그런 게 원동력이 돼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넉넉지 않은 벌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옆을 지켜준 아내에게 고마움이 크다. 김씨는 1997년 제주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10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2~3개월 치 임금을 못 받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내를 고생시킨 것 같아 마음 한 편에 미안함이 여전하다"고 김씨는 말했다.

일터를 옮긴 지금도 그는 조형에 푹 빠져있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지만 이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일도 없단다. 앞으로도 계속 일을 놓지 않을 거라는 그는 또 다른 꿈을 품고 있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제가 만든 조형물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꾸준히 더 노력해야겠죠."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