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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출근길에 번영로를 지난다. 번영로 양 옆은 우리가 흔히 해송이라고 부르는 곰솔 숲이 잘 발달돼 있다. 쭉쭉 뻗은 소나무들을 보노라면 잘 생긴 선남선녀들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었다. 헌데 작년 후반기부터였을까? 예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 하나씩 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일반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듯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소나무들의 모습이다. 언제나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만 보다가 벌겋게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자니 적이 당황스럽다. 이것이 겨울을 나기 위한 소나무의 낙엽 현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소나무도 단풍이 들고 잎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조금씩 잎을 떨어뜨리고는 시침을 뚝 떼는 탓에 미처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엔 소나무 낙엽이 장작 이상의 좋은 땔감이었다. 장작은 처음 불을 피울 때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동안 눈을 부비며 연기와 싸우고 난 후에야 겨우 장작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소나무 낙엽은 쉽게 불붙을 뿐 아니라 화력도 세기 때문에 고급 땔감으로 여겨졌었다. 해서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소나무 낙엽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이처럼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소나무 숲이건만 요즘 그 곁을 지나노라면 고통을 못 이겨 내지르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대체 소나무 숲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제주도의 소나무 숲은 시방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붉게 물든 소나무는 고사해가고 있는 중이며 그 옆의 건강한 소나무에까지 병을 옮기고 있다. 몇 년 전 강원도와 경상도 쪽에서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는 바로 소나무재선충병이다. 소나무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라는 곤충에 기생하고 있다가 솔수염하늘소가 솔잎을 갉아 먹을 때 재선충의 알을 토해 놓음으로써 번식을 한다고 한다. 알은 애벌레가 되고 이 애벌레가 소나무 각질을 뚫고 들어가 소나무의 진액을 빨아 먹음으로써 소나무가 고사한다고 한다. 재선충은 인간으로 치면 에이즈 같아서 감염되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전도적으로 20여만 그루가 감염돼 고사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라면 제주도에 소나무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제주도 당국에서는 지난 9월부터 '소나무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소나무 숲 구제에 전력을 쏟고 있다. 우선 고사한 소나무를 베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베어낸 소나무를 현장에 방치할 경우 고사목에서 기어나온 재선충이 성한 소나무에 옮아감으로써 병을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벤 즉시 고사목을 격리시키거나 파쇄하는 등 관리에 엄정을 기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 제주도에서는 본토의 전문가 200여 명을 초빙하여 현재 고사목을 벌채하고 있는데 제주도의 지형 사정상 진척이 수월치 않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어쨌든 내년 4월까지 확산을 차단한다는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쉬운 것은 발생 초기에 강력히 대처할 수는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병은 초기에 잡아야지 키운 다음에는 치료가 힘들 뿐 아니라 비용 또한 엄청나게 드는 법이다. 몇 년 전 태안 앞바다에 유조선이 침몰하여 해안이 기름범벅이 되었을 때 수십만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수건으로 기름을 닦아내어 기적을 창출한 재난 극복의 경험이 우리에겐 있다. 이젠 제주도민이 나설 때이다. 우리 지역의 소나무를 멸종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비상한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내 지역은 내가 지킨다는 굳은 자세가 필요하다. <권재효 지속가능환경교육센터 사무처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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