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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당굿
[제주당굿 기록](18)김녕잠수굿
"칠성판을 등에 지고 혼백상자 머리에 이는 힘듬을 견디는 해녀"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입력 : 2013. 11.28. 00:00:00

▲김녕리에서는 매년 성세기알 바닷가에서 이 마을 해녀들이 주관하는 잠수굿이 열려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한다. 김명선기자

매년 3월 8일에 동서마을 해녀들 잠수굿 집전
바다의 신에게 가족의 무사안녕과 풍어 기원


잠수(해녀)들의 한해 무사 안녕과 해산물의 풍요, 가족·공동체의 연대를 기원하며 행하는 무속 의례를 잠수·해녀굿이라고 한다. 해안가에서 기계 장치 없이 나잠업으로 미역·천초 등의 해초와 소라·전복·해삼·문어 등을 캐면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해녀. 아직도 제주 전역에서 5000여명이나 되는 해녀가 활동하고 있다. 해녀들은 자신들의 바다에서의 물질 작업을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한다고 표현할 만큼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을 해내는 여인들이었다. 또한 근대 일본 어선들이 출어하여 제주 어장을 황폐화시키자 일본·중국·러시아 등지로 출가(出家)해 물질을 하면서 경제 활동을 계속하던, 강인한 제주 여인들이었다. 이들이 척박한 자연환경을 일구어 살어가면서 의지할 수 있었던 이는 오로지 신밖에 없었다. 그런 해녀들이 바다의 신인 요왕에게 제를 올리는 현장을 찾았다.

해녀의 고장인 제주시 구좌읍 그 중에서 가장 넓은 바다어장을 갖고 있는 김녕리.

김녕리는 해녀마을로 지칭될 정도로, 해녀들의 활동이 왕성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김녕마을의 설촌 역사는 고려 충열왕 26년(1300)으로 소급되며, 일제 시대에 와서 동·서김녕으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2001년 1월 1일부터는 통합되어서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해녀들이 치르는 잠수굿은 여전히 동·서김녕마을이 같은날 다른 장소에서 치르고 있다.

동김녕리 성세기알 바닷가에는 매해마다 음력 3월 8일에 잠수굿이 행해진다. 잠수굿 일자가 3월 8일인 것은 '요왕황제국 말젯아들이 요왕개폐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어서 잠수굿을 그날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동김녕리는 영등굿을 하지 않은 마을로 오래전부터 전해져 지금도 요왕굿만 하고 있다.

초감제를 시작으로 요왕맞이 어업에 종사자 및 마을의 안녕을 요왕께 당부드리고, 제주도 1만8000 신위께도 고한다. 마지막으로 요왕 환송으로 굿의 줄거리가 되는데 마무리는 용와을 보내고 잠수분들과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 모여 메인심방이 넋 드림이나 점을 보는 순서로 마감한다.

굿의 줄거리를 들어보면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도 풀고 김녕본향 본풀이 이야기,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에 의해 당이 파탄될 때,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미신타파 외칠때 당의 신들이 놀랬으니 사죄를 하는 이야기, 심방들의 숨어가면서 지금까지 당을 지켜온 이야기도 심방이 말한다.

잠수들의 빗창 들고 물질하는 이야기, 불턱, 상·중·하군으로 나누어 잠수들의 삶 이야기, 요왕문에 들어설 때 잠수들은 어렵게 살면서 용왕께 얻어먹으니 감사하다는 이야기, 배가 바다에 들면 만선 되어 주십사, 육지로 배타고 나가는 중생들 무사안전 빈다.

굿 중간에 용왕을 맞이하여 좌정시키면 사전에 준비하여(어촌계에서) 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명단을 다 적어서 제장 앞에 걸면 그 명단을 일일이 호명을 한다.

김녕잠수굿의 메인심방은 서순실(53·여) 큰심방이다. 그녀는 20세때 내림굿을 받았으나 14세부터 이 일을 해왔다. 스승인 고 이중춘 심방의 뒤를 이어 제주큰굿보존회를 이끌고 있다.

서순실 큰심방은 "바다에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해녀들에게 잠수굿은 아주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며 "잠수굿을 찾는 해녀들은 매년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신에게 대접해 올 한해도 무사안녕과 풍어, 가족의 건강, 공동체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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