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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빠지다
[제주愛 빠지다]소설가 권무일씨
"제주 역사와 인물에 끝없는 호기심"
대정읍 정착 66세 등단 김만일 등 장편에
탐라 바다 누빈 제주 민초 차기 작품 구상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4. 01.10. 00:00:00

▲제주에서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해 제주 소재 역사소설을 잇따라 발표한 권무일씨. 집 앞에 서있는 돌하르방이 그를 지켜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진선희기자

그를 만난 곳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이었다. 스스로를 '복덕방 영감'이라 소개하고 틈틈이 감귤 농사도 짓지만 그의 삶은 지금, 젊은 날 가보지 않았던 길에서 꽃을 피우는 중이다.

소설가 권무일(72)씨. 학업을 마치고 나이 예순이 넘도록 산업의 역군으로 뛰었다는 그는 대기업 임원을 거쳐 중소기업 사장을 지냈다.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시련이 찾아왔다. IMF 시기에 보증을 섰다가 많은 재산을 날렸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마음을 다잡고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연고 없는 제주였다.

얼마간은 섬의 풍광을 즐기기 바빴지만 차츰 제주가 품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대정읍 추사로에 있는 그의 집에 불이 켜져있으면 늦은 시간에도 스스럼없이 방문을 두드리는 이웃들, 길에서 마주치는 농부와 해녀들이 그에게 제주의 속깊은 얼굴을 보여준 '스승'들이었다.

가족을 두고 온 제주 생활 초반, 그는 외로움이 일 때마다 습관처럼 글을 썼다. 육지와는 다른 섬의 빛깔은 그의 손 끝에서 소설이 되어갔다.

2008년 '문학과 의식'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첫 장편소설인 '의녀 김만덕'을 발표한다. 제주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끌어왔지만 제주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의녀 김만덕'이 나온 2년 뒤에는 제주 바깥의 역사와 인물로 눈길을 돌려 조선초 남이 장군을 다룬 '남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의 시선은 다시 제주로 향한다. 2012년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란 부제가 달린 '말(馬)'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전란사를 응축시켜 제주에서 만주벌판까지 무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생동감있게 풀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헌마공신김만일기념사업회의 기념사업 추진에 새로운 동력이 됐고 제주도 말산업 육성과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예순여섯에 문단에 얼굴을 내민 뒤 내리 세 편의 장편소설을 펴낸 권씨는 이번엔 탐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생각이다. 그의 부동산 사무실 한켠은 역사, 문학, 철학 서적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 '탐라의 꿈'이란 제목을 붙여본 차기작을 준비하며 100권의 책을 3번씩 읽어내려갔다. "대하소설을 구상중이지만 체력이 따라줄지 모르겠다"는 그는 다음 작품이 한 권짜리 장편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장편 '말'에서 권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발굴하는 동안 제주가 낳은, 제주에 뿌리내린 인물들이 제주에 다녀간 사람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인색한 정서에 의아심을 가졌다. 이 세대, 아니 다음 세대라도 누군가 나서서 제주를 빛낸 많은 인물들을 발굴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적었다. 이제 그는 열린 세계로 나가는 통로인 바다를 누볐던 이름없는 제주사람들을 소설로 불러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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