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채색 판화. 인쇄 출판의 자유를 얻은 프랑스인들이 앞다투어 인쇄물을 제작해 널리 퍼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 프랑스 계몽주의 학자들의 영향으로 1789년 프랑스혁명이 촉발되었다고 말한다. '사회계약론', '캉디드'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서양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 당시의 대중을 미몽에서 깨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단턴이 쓴 '책과 혁명'은 그것이 허상에 가깝다는 점을 치밀하게 밝혀내고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점잖은 계몽사상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볼테르를 예로 든다면 당대에 여러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내놓은 작가인 것은 맞지만 그 책들은 '오를레앙의 처녀', '방황하는 창녀'와 같은 포르노그래피였다. 대중들은 진지한 사상을 다룬 논문보다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열광했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와 베스트셀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현대인의 상상과는 다른 18세기 출판과 독서계의 풍경을 복원해냈다. 관습적인 고전 목록을 걷어내고 그때 사람들이 실제 체험한 문학 목록을 서지학적으로 추적했다. 특히 지하에서 유통되던 이른바 '나쁜 책'에 주목해 당대 문학의 풍경을 편견없이 재구성해놓았다. 단턴은 금지된 베스트셀러들이 포르노소설, SF, 중상비방문 같은 도서들이었음을 밝혔고 이 책들이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해 당시 사람들의 봉건적 인식체계를 뒤흔들었다고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평등'이라는 관념은 계몽서적의 우아한 논증으로부터 대중들에게 인식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계층을 뛰어넘는 애절한 연애 이야기들을 통해 감각적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독자들은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이 신분 질서 때문에 가로막힌 상황에 함께 슬퍼했고 이는 고스란히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혁명의 위대한 정신인 '평등'은 관념이라기보다 차라리 감각에 가까웠다. 그들은 그것이 평등인 줄도 모르고 평등을 갈망했다. 부록으로 포르노소설 '계몽사상가 테레즈', SF '2440년, 한 번쯤 꾸어봄직한 꿈', 정치적 중상비방문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를 실었다.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보기 드문 자료로 당대의 베스트셀러의 일부를 접할 수 있다. 주명철 옮김. 알마. 3만2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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