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변두리 동네의 아담한 상점가에서 코코야라는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세 여성이 있다. 사장은 60대 초반의 코코. 이곳엔 11년전 개업 당시부터 함께 일한 마쓰코, 최연장자이지만 신입인 이쿠코라는 점원이 함께 일한다. 이들 세 여성은 예전 같으면 서슴없이 할머니라고 불렸을 법 하다. 하지만 소설 속 여성들은 더 이상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세 여성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코코는 남편과 이혼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쓰코는 소꼽친구였던 연하의 첫사랑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림받았고 30년이 넘도록 그를 잊지 못한 채 홀로 살고 있다. 이쿠코는 어린 아들을 잃은 후 줄곧 원망해온 남편이 반년 전에 죽은 탓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를 먹고 슬픈 경험을 했어도 그들은 정체되어 있지 않다. 햅쌀이 나는 가을부터 어묵탕 나누어 먹는 겨울, 모시조개의 봄, 옥수수의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변화해간다. 제철 요리, 추억이 담긴 요리를 부지런히 만들고 열심히 먹으면서 60여년의 세월 동안 가슴 깊이 고여있던 슬픔을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고 새로운 감정과 새로운 맛으로 빈 곳을 채워가는 것이다. 환갑이 넘었다고 하면 이미 인생의 낙이 사라지고 외롭고 쓸쓸한 여생을 보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노우에 아레노의 장편 '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속 주인공들을 좇다보면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진다. 나이 60을 넘긴 여성 3인이 복작거리면서 반찬가게를 꾸려가는 모습은 참으로 씩씩하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야말로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강력한 삶의 에너지를 맛있는 음식과 함께 펼쳐놓는다. 일본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노우에는 여성의 감정과 일상을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필체로 그려내온 작가다. 이 소설 역시 유려한 문장으로 나이든 여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권남희 옮김. 문학수첩. 1만2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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