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6.4 도지사
[원희룡 후보 그는 누구인가]
역경 딛고 늘 새로운 도전 준비하는 마라톤 인생
조상윤 기자 sycho@ihalla.com
입력 : 2014. 05.22. 00:00:00

국회 의정 활동을 하던 원희룡.

유년시절 가정형편 어려웠지만 책 읽기 좋아해
학력고사 전국수석·서울법대 수석합격 유명세
노동운동→법조인→3선 국회의원 '끝없는 도전'

원희룡 후보는 학력고사 수석, 서울대법대 수석, 사법고시 수석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재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탄탄대로만 걸어 온 사람은 아니다. 바닥에서 눈물 흘린 시간이 더 많았다는게 주위의 평이다.

그간의 어려웠던 시간들은 그의 위치와 그가 가진 재능과 자원이 그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다함께' 잘사는 제주도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또다른 도전에 나섰다.

▶소년시절

원희룡은 1964년 서귀포시 중문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의 어린 시절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다. 운동화는 커녕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어린 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발가락 두개가 위를 향해 뒤틀리는 장애를 가졌다. 부모는 그의 발가락을 볼 때마다 돈을 많이 벌면 수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는 그의 발가락을 볼 때마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는 무엇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서점을 하다 폐업한 부모가 집안에 들여놓은 각종 책에 둘러싸여 지냈다. 책을 무작정 펼치고 들여다보고 또 봤다. 책이 장난감이었다. 어린 시절 책을 가까이 하도록 아버지가 끌어준 셈이다.

▶청년 원희룡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눈에 띄게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전교수석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으로 1982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수석 입학은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게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는 그해 5월 서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열린 집회를 보고 80년대 대학가를 지배했던 학생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학내를 장악한 전투경찰의 모습 등을 통해 신군부 독재의 잔혹함과 민주주의가 사라진 시대적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주체사상이 아닌 노동자와 함께 서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고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대가는 처절하고 힘들었다.

동경했던 서울 생활은 무참히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시위 도중 유인물을 돌리다 경찰서에 끌려가 10여 일 동안 구금을 당했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유기정학 처분을 당하고 인천에서 낮에는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일당 2900원을 받으면서 다닌 철공소 생활은 그를 더욱 단련시켰다. 밤에는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을 성장시켰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당시 서울대 의대에 재학 중이던 동갑내기 부인 강윤형씨를 만났다. 강씨도 제주에서 서울로 공부하러간 같은 처지의 유학생이었다. 둘은 학생운동과 야학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동지였다.

어린 시절의 원희룡.

▶3선 국회의원, 대권 도전

그는 좀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면서 공익적 기여를 위해 사법시험 준비를 결심했다. 준비 2년만인 92년 수석으로 합격했고, 고시 합격을 청혼 선물로 안겼다. 이후 서울지검과 수원지검 여수지청, 부산지검 등에서 4년여간 검사로 재직하고, 이후 2년여간 변호사 생활을 거쳤다. 이후 2000년 제16대

총선 직전 당시 거세게 분 '젊은 피' 수혈 바람을 타고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서울 양천 갑 지역에서 한나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했다.

곧바로 소장파 정치인들의 모임인 '미래연대'(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를 결성해 보수적인 당 노선을 비판하며 여권내 개혁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04년에는 최고위원에 출마, 박근혜 전 대표 다음의 득표율을 올렸다. '최연소 최고위원' 자리를 거머쥐며 지도부에 입성했다. 2007년에는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홍준표 전 의원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하며 '한나라당의 희망이자 미래'의 상징으로 주목 받았다. 2011년 6월엔 2012년 총선 불출마를선언하며 당권에 도전해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의 인생은 마라톤

역경을 딛고 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그의 인생은 '마라톤'이다. 실제 아마추어 마라토너로, 지금까지 총 여덟 번의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에게 달리기는 인내와 겸손을 가르쳐 준다. 달리는 동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신의 다른 모습도 만나게 된다. 부끄러운 모습도 보게 되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자신의 다른 모습과도 마주치게 된다.

달리는 동안 지혜도 얻는다. 큰마음으로 복잡한 문제를 바라볼수 있게 하는 시간은 달리는 동안이다.

모든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서브쓰리'를 꿈꾸듯 그도 꿈을 꾸며 도전한다. 자신의 도전을 넘어 보다 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인생역정처럼 변화와 도전을 위한 그의 발걸음은 다시 시작된다.

[프로필]
▶성 명= 원희룡
▶생년월일= 1964년 2월 14일
▶출 신 지= 서귀포시 중문동 1373
▶주 소= 서귀포시 중문로 102(중문동)
▶혈 액 형= A형
▶병 역= 제2국민역
▶학 력= 제주제일고등학교(25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학력고사 전국 수석,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 전공 석사, 제주대학교 명예 정치학박사
▶경 력= 서울·여주·부산지검 검사, 변호사, 제16·17·18대 국회의원, 세계경제포럼 '영 글로벌 리더' 선정,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후

보,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 한 나라당 쇄신 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가 족= 부인 강윤형씨와 2녀
▶좌 우 명= 역지사지(易地思之), 실사구시(實事求是)
▶종 교= 기독교
▶존경하는 인물= 세종대왕, 스티브 잡스
▶감명깊게 읽은 책= 제3의 물결
▶가장 기뻤을 때= 두 딸 출생
▶가장 안타까웠을 때= 소신을 끝까지 지지키 못했을 때

[선거캠프 누가 뛰고 있나]후보경선 3인방 구심점… 자원봉사자 큰 힘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의 선거캠프는 선거대책본부장을 포함해 선대위원장이나 고문 등을 임명하는 기존의 선거캠프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는게 특징이다.

유급 선거사무원을 두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지지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선거대책기구를 만들지도 않았다. 제주발 선거혁명을 통해 대한민국 선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캠프의 명칭도 도민 화합과 통합을 추구하며 모든 도민에게 문호를 개방한 '도민캠프'로 정했

다.

도민캠프에는 선거대책기구가 없어 본부장이라든가 위원장, 고문 등이라는 직책 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캠프측은 설명했다. 원희룡 후보가 대표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수평적 협치'를 먼저 실천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도민캠프의 구심점은 새누리당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아름다운 경선을 펼쳤던 김경택 전 정무부지사, 김방훈 전 제주시장, 양원찬 김만덕기념사업회 대표 등이다. 원희룡 후보가 국회의원 시절 호흡을 맞췄던 현광식 보좌관이 사무장을 맡고 있으며, 언론인 출신인 강홍균씨가 대변인을 맡고 있

다. 이 둘은 원 후보와 제주제일고등학교 동창이다.

아울러 도시락을 지참한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 도민캠프의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선거 이후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당초 원 후보의 약속대로 혈세로 운영되는 유급 선거사무원은 도민캠프에 한명도 없다는게 캠프측의

얘기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