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바라본 제주시 동쪽 14㎞ 지점에 자리잡은 조천읍 신흥리 바닷가에서 묘한 기운 뿜어내는 엄장매는 설문대할망 전설에서 육지까지 다리 놓으려던 출발점 제주마을은 제주인의 삶의 뿌리이자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인의 역사와 삶이 오롯이 스며든 제주마을은 제주정신과 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제주마을은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으로 유명한 양기훈씨가 직접 제주도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꼭꼭 숨겨진 마을의 자원을 발굴하고 마을의 꿈을 찾는 대장정에 나선다. 제주시 동쪽 14㎞ 지점에 위치한 신흥리. 1915년부터 신흥리라는 마을 이름으로 불리기 전까지 왜포(倭浦) 내포(內浦) 고포(古浦)라고 하였다. 옛날 지명이 뜻하는 그대로 항아리 단면처럼 바다가 육지 내부로 모래사장을 형성하며 들어온 지형 때문에 자연적으로 포구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김석은 노인회장이 들려주는 마을 유래는 지금의 조천과 경계를 이루는 엄장매에서 엄씨 장씨 등이 거주를 시작, 지금의 큰물이라는 용천수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씨, 김씨, 임씨, 손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엄장매는 설문대할망 전설에서 육지까지 다리를 놓으려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신흥리 바닷가는 함덕과 조천을 이어주는 해안도로 덕에 놀라운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천리 면적이 865㏊, 함덕리 면적이 1080㏊, 신흥리는 118㏊. 함덕과 조천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만 마을임을 보여주는 숫자다. 옆 마을과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을 뿐 결코 꿈이 작은 마을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그 자신감을 캐물었다. 공통적인 자부심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산이라는 생각이 마을 전체를 감싸는 것 같다. 신흥리 출신 출향인사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곳. 마을 위에 있는 독특한 지명 북구룡(北九龍)의 정기를 받아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김보홍 신흥리장 전망대로 으뜸인 왜포연대 해안도로 개설로 도로 안쪽 해안에 악취가 발생하자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메운 매립지 설문대신화 스토리텔링 자원인 엄장매 그러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민선 6기 제주도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한다. 특별법 제도개선을 통하여 국가사무에 묶여 있는 이러한 민원들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여주는 것. 또한 성과로 답하는 모습. 신흥리 바닷가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관광숙박업소와 해양관광 관련 사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신흥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옛 제주적인 이미지가 풍부하고, 독특한 해안구조가 포근한 느낌을 주며, 전체 분위기가 아늑하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왜포연대 같은 전망 좋은 역사유적을 활용해야 함에도 진입로조차 만들 수 없는 실정을 질타하였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해안도로 인접면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뒤덮어버리는 파래들을 청소하는 예산은 만들면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행정이다. 바닷물은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썰물에 쓸려나가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매해 반복 투입되는 예산을 없애는 길 아니냐"고 주민들이 따지고 있는 것이다. 그 곳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이 고민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자. 신흥리의 고민은 그냥 지리적 특성으로 치부하기에는 과학적 해법이 너무 다양하게 널려있어 보인다. 마을공동체는 어떤 존재인가. 김옥녀(52) 부녀회장의 생각을 통하여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2남 1녀 중에 그 누구도 신흥리에 남아서 살아갈 자녀가 없을 것 같다는 예측이 그것이다. 신흥리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노인회 어르신들을 모셔서 한 달에 한 번 식사대접이라도 하지만 30년 뒤 부녀회원들이 할머니가 되면 누가 자신들을 불러서 식사대접이라도 하겠냐고 자문자답하면서 튀어나온 소리는 "식당에서 불러 먹지 뭐." 마을공동체는 세대를 이어가는 문제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모습보다 시간, 성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제주도 농어촌 마을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녹아있다. 그래서 신흥리 마을 지도자들은 다각적인 관점에서 관광자원화 사업에 열정을 보인다. 결국은 자녀들이 신흥리를 물려받아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구다. 내년 1월이면 마을 이름이 신흥리라고 불린지 100년. 다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게 된다. 도전적인 이 마을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슬기를 모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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