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참혹한 강제집단사 미군은 직접적인 군사 지배 기지문제 여전히 고통 받아 15세기의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불리며 명나라와 긴밀한 조공관계를 맺고 아시아태평양의 경계에서 번성했다. 17세기초 일본 사츠마번의 침략을 받고 실질적으론 일본 본토의 지배하에 놓이지만 겉으론 청나라와 긴밀한 조공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양속 체제에 속박된다. 결국 19세기 후반 류큐왕국은 메이지국가의 새로운 질서에 적극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대 일본국가에 병합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오키나와인들에게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본토의 언어, 신화와 의례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일련의 황민화 정책이 시작된지 70년이 지나지 않은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오키나와를 전장으로 삼았다. 3개월간의 오키나와전은 21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자국민인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살해와 집단 자살 등 참혹한 강제집단사가 이 시기에 벌어졌다.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에서 해방되는가 싶었지만 오키나와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군의 토지 수탈과 생활파괴였다. 종전 이후 27년간 오키나와는 미군의 직접적인 군사 지배를 받았다. 1952년 4월 28일, 대일강화조약 발효로 본토는 미군정에서 벗어났지만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분리돼 그대로 군사식민지로 남았기 때문이다. 1972년 미국은 일본에 오키나와를 반환했지만 여전히 오키나와는 기지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하지만 현재 주일미군 기지의 75%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호주국립대 명예교수인 개번 매코맥과 일본 평화운동가 노리마츠 사토코가 쓴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는 이같은 배경을 가진 오키나와 저항운동 70년사를 집대성해 놓았다. 한반도와 오키나와는 과거엔 일본에 점령당하고 2차 대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으며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구도 속에 불평등한 지위를 감내해야 했던 유사성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남달리 다가온다. 지난 7월, 평화헌법 아래 무력사용을 금지받았던 일본은 70년만에 '전쟁국가'로 돌아가겠다며 집단자위권 행사를 결의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여론의 반발에 갑작스레 입법처리가 내년으로 미뤄졌다. 일본 정권의 전쟁국가 선언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평화운동의 구심점이 바로 오키나와다. 두 저자는 오랜 시기 이어진 오키나와 저항운동을 두고 "세계적인 군사기지제국인 미국의 전략적 계획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자 비폭력 시민운동의 요체를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정영신 옮김. 창비. 2만8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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