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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그곳을 탐하다
[골목, 그곳을 탐하다](14)성산읍 신천리
거대한 캔버스로 변신중…문화예술 입는 바람코지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4. 08.28. 00:00:00

신천리 입구에는 물고기 모양의 와이어아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김지은기자

영화 '선샤인' 촬영 계기로 마을 활력 방안 고민
신천 아트빌리지 조성으로 마을 디자인 기초 마련
주민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5개년 목표 세워

마을 입구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철사를 구부려 만든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웬만한 어른 키보다 높은 대형 벽화가 그 아래에서 시선을 붙잡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변화를 알리는 거대한 이정표를 보는 듯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이야기다.

#성산읍 끝자락 해안마을

신천리는 성산읍의 맨 서쪽 해안 마을이다. 한라산에서 제주 남동쪽으로 흐르는 천미천의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마을 입구에서 20분 정도 골목을 따라 걸으면 금세 긴 해안선이 자리한 포구까지 와 닿는다. 자리돔과 해녀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던 이 마을에는 주민 560여명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여느 농촌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드문 골목 안은 더 없이 조용했다. 그랬던 마을이 최근 변하고 있다. 골목 안에 '문화 예술'을 입혀 마을의 활력을 더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다. 주민들과 '육지'에서 온 영화인들의 만남이 원동력이 됐다.

영화 '션샤인'을 통해 만난 신천리 주민과 영화인, 예술인 등은 마을에 활기를 더하기 위해 '바람코지:신천아트빌리지' 조성 사업을 진행해 왔다. 사진은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예술인들(사진=1000DAY·새달콤유화 블로그)

#영화로 '통'하다

만남의 계기는 영화였다. 신천리가 장편영화 '선샤인'(Sunshine·감독 박진순)의 촬영지로 결정되면서 지난해 7월 제작진이 마을을 찾았다. 탈북 소녀가 팝아트를 접한 뒤 화가가 돼 가는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팝아티스트 등 예술인도 동행했다. 한달 남짓의 짧은 촬영기간 동안 마을 안길에는 팝아트 풍 벽화 9점이 남았다. 주민들이 낯설게 느끼진 않을까 하는 제작진의 걱정과 달리 "영화 촬영팀에게 커피를 타다 주면서 격려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강문성 신천리장이 말했다.

이들의 만남은 새로운 고민을 낳았다. 마을을 좀 더 활력 있게 만들어 볼 순 없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신천리 주민과 젊은 영화인, 예술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고령화되는 농촌마을에 생기를 더하기 위해서 문화예술 마을을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였고, 그 기초를 다지기 위해 벽화·조형물 조성 등 마을 디자인 작업이 계획됐다. '바람코지:신천 아트빌리지 조성사업'의 시작이었다.

'바람코지'를 기획한 이상욱 PD는 "영화를 찍으면 그냥 떠난다는 인식이 강한데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촬영하는 것 이상의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면서 "아트빌리지 조성사업은 신천리 마을 어르신들과 젊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반으로 신천리 마을에 변화를 일으켜보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영화인부터 작가까지 30여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했다.

골목안에 그려진 벽화

#'바람코지'로의 변화

올해 초 제주자치도의 지원을 받으면서 마을 디자인이 본격화됐다. 영화 촬영 당시 그려졌던 벽화는 시간이 갈수록 그 수를 늘려갔다. 지난해 12월부터 추가로 그려진 벽화까지 더하면 현재 28점이 마을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조형부터 회화, 팝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저마다 색깔을 담아 완성해낸 작품들이다. 골목은 거대한 캔버스가 돼 각기 다른 개성의 작품을 품는다.

주민들의 공감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활력 있는 문화예술 마을을 만들자는데 뜻을 같이한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문성 이장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영화 제작진이 수십 차례 제주를 오가면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도내에 있는 벽화 마을을 둘러보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면서 마을만의 색깔을 담기 위해 함께 고민했다"고 말했다.

오는 9월 26일부터 27일까지 마을에선 작은 축제가 열린다. 선샤인 영화 시사회와 함께 '바람코지' 신천리를 알리는 마을 지도 제막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동네 풍물패 등 주민들이 공연을 마련해 흥을 돋운다. '신천 아트빌리지 조성사업'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바람코지 셀프 카페

#지속가능한 발전 고민해야

영화 촬영을 통해 신천리는 변하고 있다. 문화산업이 지역경제 활성화 계기를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제주영상위원회 김희석 주임은 "영화 촬영을 계기로 제작진과 주민들이 마을의 발전 방안을 고민한 도내 첫 사례"라면서 "마을의 변화는 영화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벽화를 그려놓는 것 이상의 운영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 점은 주민들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단기간의 변화로는 '활력 있는 문화 예술 마을'을 만들자는 큰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앞으로 5개년 계획을 세워 사업을 지속해 나가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문성 이장은 "일주도로 변 마을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가는 여행객들이 늘었지만 아직도 마을 안길로 들어오는 인구는 적다"면서 "앞으로 장기적으로 마을 디자인을 위한 작업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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