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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그곳을 탐하다
[골목, 그곳을 탐하다](15)세화민속오일시장~벨롱장
오일장에 부는 젊은 바람… 100년 넘어 또다른 미래로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4. 09.11. 00:00:00

100여년 전부터 이어져온 세화민속오일시장이 벨롱장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은 세화오일장 인근 해안도로에 열리는 문화장터 '벨롱장'

1900년대부터 제주 동부지역 물류의 중심지
200개 점포 영업… 대형마트에 밀려 매출 급감
문화장터 들어서면서 젊은이들 발길 늘어나

장이 서자 마을이 들썩였다. 추석 대목을 맞은 오일장은 아침부터 활기찼다. 장보기를 마친 양손에는 짐이 한가득 들려 있었고,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흥정소리가 커져갔다.

지난 5일 세화민속오일시장의 풍경이다. 대형마트에 밀려 전통시장의 설 자리가 좁아진 요즘에도 이곳은 5일마다 어김없이 장이 선다. 한 세기를 지나온 장터는 오늘날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 100년 전 그때처럼

세화오일장의 시작은 제주도 내 '오일장'의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 1906년 윤원구 군수가 부임하면서 9개 지역에 장을 세웠는데 그 중 한 곳이 세화장이다. 제주 읍내를 비롯해 이호, 외도, 애월, 삼양, 조천, 김녕, 서귀포에도 장이 들어섰다. 농촌지역까지 상거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

100여 년 전처럼 세화오일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내를 제외한 초창기 장터가 사라진 것과 달리 장소만 여러 차례 바뀌었을 뿐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해 왔다. 예부터 제주 동부지역 물류의 중심지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장이 열리면 제주시나 서귀포 할 것 없이 각 지역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었어. 장날이면 우도 주민들도 배를 대절해 세화 포구로 들어오곤 했는데, 한 번 나올 때면 장도 보고 땔감용 나무도 가득 싣고 나갔지." 세화오일장 상인회장 고기선씨의 말이다. 세화 토박이인 고씨는 1980년대 말부터 오일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세화오일장과 함께 삶을 이어온 이들은 '단골'로 남았다. 장에서 만나 김화자(80·구좌읍 종달리)씨도 그랬다. "날 때부터 세화장에 왔다"는 김씨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면 여전히 장을 찾는다. "요즘엔 마트도 많이 있지만 여기에도 모든 물건이 다 있다"면서 "김칫거리를 살 때도, 반찬거리가 떨어질 때도 온다"고 말했다.

세화오일장 전경



# 예전만 못한 전통시장

김씨의 말마따나 세화오일장에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반찬거리부터 신발, 의류, 약초, 과일, 공예품, 간단한 간식까지 한 곳에서 살 수 있다. 2013년에 새로 지어진 오일장 건물에 입점해 있는 점포만 해도 150개다. 장터 주변으로 자리한 노점까지 합하면 200개 이상 점포가 영업 중이다.

백여 년 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위기는 비껴가지 않았다.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대형마트에 밀려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 전체 매출액이 2010년 약 40조원에서 2013년 20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세화오일장 상인들이 체감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화오일장 고기선 상인회장.

고기선 회장은 "20년 전에는 물건 값이 지금보다 쌌지만 지금 수입이 그때보다 30% 줄었다"면서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의 지원도 대부분 시내 지역에 쏠려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주차장과 주민 쉼터 등 편의시설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콘텐츠나 아이디어가 더해져야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 젊어지는 오일시장

세화오일장에는 뜻밖의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오일장이 열리는 5일과 20일에 시장 인근 해안도로에 또 다른 장터가 들어서면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야말로 '반짝' 열렸다 닫히는 '벨롱장'이다. '벨롱'은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을 뜻하는 제주어다.

지난해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4~8팀이 참가해 좌판을 펼치던 것과 달리 현재 70~80팀이 참가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입소문을 듣고 모여든 '현대판 문화 장돌뱅이'들은 손수 만든 음식이나 액세서리, 옷 등을 팔거나 소장하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펼친다. 길거리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는 버스킹 공연도 연다. 30~40대 제주 문화 이주민들이 처음 시작한 벼룩시장이지만 사는 곳, 연령에 무관하게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놀이공간이다.

이날 처음으로 장터에 나온 오애자(60)씨는 "지인의 딸이 액세서리 디자이너인데 그 딸이 만든 작품과 소장하고 있던 물건을 들고 왔다"면서 "이중섭거리 아트마켓에 나갔다가 벨롱장에 대해서 듣게 됐다. 장사를 하기보다는 놀러 오는 기분으로 왔다"고 말했다.

도민과 관광객 사이에도 이미 입소문이 났다. 부산에서 온 이지원(29)씨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장이 열린다고 해서 함께 와봤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면서 "직접 만든 걸 파니까 믿고 살 수 있다"고 했다.

벨롱장을 찾은 젊은이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세화오일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일장을 찾았던 지역주민들이 벨롱장을 둘러보기도 한다. 굳이 물건을 사고팔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 어우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일장은 거래의 공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의 장으로 나아간다.

벨롱장의 시작을 함께했던 물고기(별명·42) 씨는 "지난 8월에는 세화오일장이 서는 장소를 빌려 야(夜)시장을 열기도 했다. '논다'는 말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예술작품이 생겨나고 그걸로 부수적인 경제 효과가 날 수도 있다"면서 "벨롱장의 목적이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그런 효과는 절로 따라올 수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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