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통영의 한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짭조름한 바다 향을 뒤로 하고 얼마쯤 걸었을까. 언덕 끝에 선 작은 마을에 발길이 닿았다. 한 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는 풍경이었다. 구불구불한 길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과 녹슨 창살이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듯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통영항에서 인부로 일하던 외지인이 머물며 만들어진 이 동네는 몇 년 전만 해도 낙후된 곳으로 여겨지며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으로 인지되는 것은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올해 초부터 기획 '골목을 탐하다'를 연재하며 비슷한 이유로 사라지는 제주의 골목 풍경을 마주해 왔다. 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되는 산지천 일대도 이러한 경우다. 수십년 가까이 골목 안길에 있던 다방도, 구멍가게도 낡고 허름한 흔적으로 분류되며 사라져갔다. 복개됐다 복원되며 수차례 모습을 달리해온 산지천은 또 다시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러나 개발이 무조건적인 발전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골목 안에서 만났던 오래된 공간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이를 대변했다. 제주 원도심 곳곳에 흐르는 이야기를 모아 골목 지도를 만들고, 침체된 골목에서 '문화예술의 난장'을 벌이는 것은 원도심이라는 공간이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표현으로 읽혔다. 통영의 그 마을은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기에 더해 '동피랑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낡은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워지는 방법을 찾은 덕분이었다. 2007년 한 시민단체가 벽화 공모전을 열며 낡은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고, 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마을을 지키자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통영시도 철거방침을 철회했다. 골목의 모습은 삶의 변화에 따라 수없이 바뀌고 있다. 동피랑마을 사례는 오래된 골목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 사회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김지은 뉴미디어뉴스부 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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