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 아나키즘. 이 말처럼 세상의 오해를 받아온 사상도 흔치 않다. 아나키라는 말이 주는 느낌에다 급진적인 정치 이념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줄곧 활동해온 탓도 있다. 예일대 제임스 스콧 교수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는 아나키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인간사는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오랜 기간 농민, 계급투쟁, 저항, 개발프로젝트, 동남아시아 산악 지역의 최빈층 사람들에 관한 글을 쓸때 품어왔던 생각들을 풀어낸 책이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 처음으로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상호성 혹은 위계와 국가 지배가 없는 상태의 협동을 염두에 뒀다. 바쿠닌은 자유가 국가를 비롯한 외부인이 부여하거나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이고 그것에 대한 제약 또한 본래부터 인간에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크로포트킨은 인간 세상을 넘어 자연과 만물을 생동,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경쟁이 아닌 협동을 설파했다. 아나키즘은 일체의 억압을 거부하며 근대에 등장한 일부 몽상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근본 법칙으로 인류사의 저변에 거대한 흐름으로 도도히 흐르는 것이었다. 이같은 인식 아래 지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나키스트 사상과 거리를 둔다. 그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올 무렵 아나키스트 사상을 지배했던 공상적 과학주의의 주요 흐름을 거부한다. 과학적 진보를 통해 인류가 전보다 더 합리적으로 변하고 해박해짐에 따라 정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사실은 달랐다. 굳이 정치를 몰아내려 하지 않아도 물질적인 풍요가 자연스럽게 정치투쟁의 새로운 영역을 창출해냈고 국가 사회주의는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려는 지배계급의 조합보다 못한 관리체제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주체가 오로지 국가뿐이라는 주장도 믿지 않는다.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노예제도, 여성을 소유물로 삼았던 관행, 전쟁, 강제노역의 관행이 뿌리깊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와 재산, 지위의 현격한 차이를 용인해주는 자유지상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엄청난 차이가 자발적인 것 같은 동의를 이끌어내고 합법화된 강탈에 불과한 교환을 만들어내는 곳에서 진정한 자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훈 옮김. 여름언덕. 1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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