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지 않는 남자 주인공 포스카 시간의 노예된 생활에 무력감 그럼에도 인간은 불멸을 꿈꿔 촉망받는 여배우 레진은 지방 공연 중 머물던 호텔에서 정원의 긴 의자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늘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의 이름은 레몽 포스카. 불멸하는 남자다. 포스카의 비밀을 알게 된 레진은 영원한 시간 앞에서 너무도 하찮아 보이는 자신의 존재에 절망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두고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인간은 유한성이라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불가능한 시도를 벌인다. 불멸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마냥 불행한 것일까. 그와 반대로 불멸을 얻게 된다면 인간은 행복해질까. 인간은 필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자신에게 삶의 매 순간이 유일하며 절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이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주인공 레진은 포스카가 불멸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자신에게 불멸성을 가져다줄 유일한 기회로 생각한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영원히 살아갈 그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게 될 거라는 추론에서다. 하지만 포스카는 불멸성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사실을 레진에게 알리려 한다. 자신이 불멸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필멸하는 인간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납득시키려 한다. 포스카는 자신을 무한정 흘러가는 시간의 노예로 여기고 궁극적으로 그런 삶에 권태를 느낀다. 그의 옆에서 사람들은 죽고, 역사는 거의 제자리에서 도는 쳇바퀴처럼 아주 느리고 무겁게 굴러간다. 오늘의 투쟁에 헌신하고 오늘의 승리를 즐기기엔 그의 시간은 너무 길다. 그는 의미없는 불멸성보다 죽음을 통해 매듭이 지어지는 삶, 곧 유한한 삶을 원한다. 급기야 포스카의 이야길 들으며 불멸성 획득을 포기하는 레진. 그는 이대로 불멸하는 존재가 되는 꿈을 접은 것일까.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광기어린 꿈이다. 그래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숙명적 실존 조건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평생의 동반자였던 실존주의 사상가 장폴 사르트르에게 헌정했다. 변광배 옮김. 삼인. 2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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