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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人터뷰
[한라人터뷰]전국 최고령 이사무장 정시훈씨
"마을주민 덕에 여기까지 왔어"
강봄 기자 spring@ihalla.com
입력 : 2014. 12.22. 00:00:00

26년여 동안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마실지기'였던 정시훈 이사무장. 강봄기자

늦깎이 시작… 주민의 심부름꾼으로 26년 봉사
이사무소서 잠을 청한적도 다반사… 올해 퇴임

"이렇게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을지 몰랐지. 1년, 2년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정시훈(75) 이사무장. 전국 최고령 이사무장인 그는 늦깎이로 시작해 무려 26년여 동안 한 자리에서 리민과 마을을 위해 애써 왔다. 그런 그가 올해를 끝으로 쉼 없이 달려온 발걸음에 마침표를 찍는다. 12월말로 이사무장직을 내려놓는다.

정씨는 '88서울올림픽이 있던 그해 9월, 이장을 거쳤거나 그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이사무장직을 맡게 됐다. "당시 이장님이 도와 달라고 해서 시작한 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와 버렸어. 특별히 내가 잘 해서라기보다 이장들과 마을주민들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으면 어림없었지. 특히 역대 이장님들이 좋으셔서 나이 차이 같은 건 그리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지금까지 견뎠지."

지금처럼 전산 시스템이 없던 시절엔 각종 공문서 등을 수기(手記)로 작성해야 했다. 주민들이 자신을 믿어준 덕분에 별 탈 없었단다. 세월이 지나 정보화 시대가 들어서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정씨는 지금은 어느 정도 공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는 거의 발로 뛰었지. 신청하라는 것도, 고지서 같은 것도."

정씨는 몸이 성치 않아 그동안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일이 몸에 배어 버린 탓인지 아무리 아파도 처리해야 할 일은 반드시 마무리했다. 행정 처리를 하고 난 뒤 이사무소에서 잠을 청한 적도 많았다.

특히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단다. 아들이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해 남아 있는 3명의 손주들을 아내가 발품을 팔아가며 키웠기 때문이다. "내가 키웠다는 말은 하지 못해. 집에 보탬을 준 게 하나도 없거든. 이제 일을 그만두고 난 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내 곁에 있어주는 것 밖에 없어."

후임자에게 한 마디 했다. 이사무장은 '주민의 심부름꾼'이라고.

30년 가까이 상도리 '마실지기'였던 정시훈 이사무장. 취재가 끝나자 두꺼운 업무파일을 옆구리에 낀 채 이사무소를 나섰다. 26년 전 9월 어느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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