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종휴 선생이 생전 한라산 조사 도중 영실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라일보 DB 한라산 곳곳 누비며 미개척 '식물의 보고' 가치 부각 고인된지 30여년간 선각자 족적 뇌리서 잊혀지며 묻혀 최근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족… 도·의회 등 지원 절실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민선 6기 원희룡 제주도정의 슬로건(표어)이다. 자연과 문화 분야에 있어 제주는 이미 세계적 수준의 반열에 올라 있다. 자연과학 분야 유네스코 3관왕(세계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이라는 세계 유일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터다. 이러한 걸출한 성과를 이룩한 데는 무엇보다 사람이 있었다. 고(故) 부종휴 선생은 제주자연과 문화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각자 중 한 분이다. ▶부종휴, 그는 누구인가='산과 브람스와 커피, 파이프와 한라산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분.' 베스트셀러의 제목이 아니다. 제주시 구좌읍 비치미오름 자락에 위치한 한산(漢山) 부종휴(1926~1980) 선생의 묘비명이다. 평생 자연인으로 살다 간 그의 인생을 짧지만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는 광복 이후 식물과 동굴, 산악, 고고학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제주 곳곳을 누볐다. 그의 발길이 스쳤던 한라산과 만장굴 등 용암동굴은 반세기를 넘겨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숨결과 족적이 남아 있음이다. 특히 부종휴 선생은 광복 이듬해 김녕초등학교 '꼬마탐험대'를 이끌고 미지의 세계였던 만장굴을 최초로 답사, 세상 밖으로 알렸다. 빌레못굴과 수산굴, 서귀포 미악 수직굴 등 제주의 수많은 용암동굴들과 그 속에 묻혀 있던 고고·역사적 유물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그가 일궈낸 개가였다. 그는 한라산 박사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정상만 350여회 등정하며 미기록 식물 등 한라산 자원의 개척자였다.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혼자 한라산의 식물을 조사하고 학계에 알렸다. 1400여종에 그쳤던 한라산 식물에 300여종을 새롭게 찾아냄으로써 오늘날 한라산을 1800여종이 자생하는 '식물의 보고'로 부각시켰다. 그가 1960년대 초 후학들에게 "제주식물을 10년만 파고들면 세계적인 학자들도 머리를 숙여 올 것"이라고 했던 것은 선각자의 혜안과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적십자산악안전대 창립을 주도하고, 한라산 곳곳을 누비며 10개의 등반코스를 새롭게 정립하는 등 제주 산악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이러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조사는 한라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 토대가 됐다. 그가 1974년 집필한 '한라산 천연보호지구, 자원보고서'는 그 결정판이다. 생전 동굴탐사중인 故 부종휴(사진 맨 왼쪽). 사진=한라일보 DB 기념관은 커녕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흉상이나 전시관, 공적비 조차 찾아볼 수 없다. 스승 부종휴와 함께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탐험정신과 용기를 보여준 꼬마탐험 대원들의 이야기도 세월이라는 지우개에 지워져 갔다. 그를 따라 미답의 동굴탐험에 성공했던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역들인 코흘리개 어린 학생들은 현재 몇 명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 그동안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 추진에 대한 논의는 수차례 있어 왔다. 하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4년 11월 한라산연구소와 한라일보사 공동 주관으로 한라산과 부종휴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제주도는 부종휴 선생에 관한 기념사업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 검토된 부종휴 선생의 업적 발굴 용역이 예산 편성과 심사 과정에서 제외됐다. 부종휴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35년이 흘러 올해 그 결실을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지난 13일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회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됐다. 하지만 기념사업회의 법인화, 예산 확보 등 진행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다. 이에 대해 부종휴 선생과 같은 제주도의 자원을 발굴하고 알리고자 했던 선구자에 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고 기념하면서, 제주도 연구사를 정립해나가는 것이 우리 후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라는 책임 의식이 제기되고 있는 터다. 한라일보, 부종휴 발자취 재조명 앞장 10여년전부터 연재기사 등 통해 공론화 장 마련 올해 도·도의회·교육청 차원 관심 이끌어내기도 '부종휴'란 이름이 다시금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그가 탐사했던 여느 동굴들처럼 말이다. 이 같은 재조명 과정에서 한라일보는 암흑의 동굴 속 깊은 곳에 잊혔던 부종휴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고 이끌었다. >>사진 한라일보는 2000년대 초부터 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라산대탐사를 진행하면서 식물과 지질, 동굴전문가 등으로부터 부종휴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2004년 '생태계 보물섬 제주, 백년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특집기사를 연재하던 중 그가 한라산 박사로서 크나큰 족적을 남겼음을 확인, 재조명 작업에 들어갔다. 그해 한라산연구소와 공동 주관으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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