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옆 이중섭거주지에서 펼쳐진 제주국제실험예술제. 이주 예술가 증가 양상...지역 문화판 확장에 영향 다양성 문화가 제주에...어떻게 녹아들지 관심거리 전시장 바닥에 꽃이 피어났다. 초대전 작가가 전시를 마무리지으며 흔적을 남기듯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에 앞서 전시장을 거쳐간 다른 이들도 그랬다. 떠남과 머무름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한때 원도심 사람들의 추억을 쌓아올리던 음악다방이었던 그곳은 지금 세월을 넘고넘어 제주섬 밖에서 서귀포로 찾아든 예술가들의 열린 공간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서귀포 문화 보폭 몇년 새 커져"=서귀포시 중정로에 있는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지난해 12월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맞은편에 문을 연 이곳은 서귀포시내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유일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지역 인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비어있던 지하 공간을 새롭게 꾸며놓았다. 개관 이래 열린 전시만 벌써 네 차례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월 한 차례 문화가 있는날 마련되는 '미친 데이', 창작자 초청 프로그램인 '충전소 데이', 제주를 스쳐가는 예술가들에게 언제든 무대를 내주는 '노마드 데이' 등 빛깔있는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의 프로젝트매니저인 이정희(꽃삽컴퍼니 대표)씨는 이주 예술가다. 작년 서귀포에서 제주국제실험예술제를 이끈 남편 김백기씨와 함께 3년째 제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 대표는 몇 년 새 서귀포의 문화 지형이 놀랄 만큼 변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문화 보폭이 커지고 있다"는 말로 그 '현상'을 요약한 이 대표는 제주도, 그중 서귀포에 대한 다른 지역 예술가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귀포시 원도심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에서 콘서트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제공 ▶마을 창고 등 개조해 이색 문화공간=우연일까. 이주 예술가들의 발길이 머문 곳은 빈집이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2014년까지 유휴 시설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빈집 프로젝트' 방식의 사업만 해도 이주민들의 몫이 된 경우가 많았다. 정책적 지원과 맞물려 제주도 농어촌의 빈집들은 읍면으로 귀촌한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창작 둥지가 됐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의 '꿈꾸는 고물상'. 마을안 낡은 창고를 폐자재와 버려진 고물을 재활용해 일상과 문화예술이 만나는 놀이터로 만들었다. 창작 공간이자 발표장인 꿈꾸는 고물상에서는 그동안 뒹굴뒹굴 영화상영회, 고물데이 벼룩시장, 문화이주자 워크숍, 문화사랑방 '모다정'모임, 창작공연 '레이니데이' 등 재기발랄한 제목을 붙인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풀어냈다.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의 '문화공간 양', 애월읍 봉성리의 '반짝반짝 지구상회' 같은 곳도 이주민들이 기획자나 창작자로 참여하고 있는 곳으로 마을안 빈집을 손질해 생겨났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 꿈꾸는 고물상은 영화 상영회 등 재기발랄한 문화이벤트로 지역과 만나고 있다. 사진=꿈꾸는 고물상 제공 ▶남다른 자연과 문화가 창작 텃밭=문화를 충전하는 장소가 된 이들 빈집은 한결같이 지역과 만나려 애쓰고 있다. 마을 곳곳에 흩어진 생활문화유산, 제주의 숲과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가치를 창작을 통해 알리고 지역주민과 나누는 일을 벌여왔다. 빈집에 사람들을 불러모으며 온기를 더하듯 나홀로 작업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와 걸음을 맞추려는 노력들이 꾸준하다. 제주 귀농귀촌이 열풍이 된 시대, 유다른 섬의 자연과 문화를 창작 텃밭으로 삼으려는 예술가들의 이주도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지금도 제주 어느 곳에선 빈집에 깃들어 이 땅에서 길어올린 사연을 창작물로 빚어내는 이들이 있다. 근래에 남녘의 자그만 도시인 서귀포의 문화판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주 예술가들의 활동도 그같은 진단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한다. 이주 예술가들이 그려내는 다양성의 문화가 이 섬에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지 궁금한 가운데 지역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려온다. 이정희 대표는 "하드웨어는 어디에나 많지만 그걸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며 "이주 예술가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그들이 제주의 좋은 콘텐츠를 서포터즈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귀농보다 10배 많은 귀촌가구… 제주 이주 예술가 증가세 통계청의 귀농·귀촌인 통계는 제주 문화이주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귀농보다 10배 많은 귀촌가구는 제주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이주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3월에 나온 2014년 귀농·귀촌인 통계를 보자. 2014년 전국 귀농가구는 1만1144가구로 전년에 비해 221가구(2.0%)가 증가했다. 시·도별로는 경북(2172가구), 전남(1844가구), 경남(1373가구)순이었다. 제주는 306가구 558명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268가구 492명보다 조금 늘었지만 전체 귀농가구의 2.7%에 불과하다. 귀촌가구 통계는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 2014년 전국에 흩어진 귀촌가구는 3만3442가구로 전년에 비해 1만1941가구(55.5%)가 늘었다. 증가폭이 크다. 경기가 1만149가구로 가장 많고 충북이 4238가구로 뒤를 이었다. 제주는 전국에서 세번째로 귀촌가구가 많았다. 전년도 204가구 493명에서 2014년엔 3569가구 7439명으로 가구수만 20배 가깝게 늘어났다. 전체 귀촌가구의 10.7%를 차지하는 수치다. 통계청은 귀촌가구수가 많은 시·도를 두고 귀촌인들이 수도권과 인접해 생활 여건이 낫거나 자연경관이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제주를 귀촌지로 택한 경우 휴양이나 편안한 노후 생활을 염두에 뒀겠지만 문화이주 사례 역시 적지 않다. 귀농가구 비율에 비해 귀촌가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은 제주섬의 자연과 문화를 창작의 터전으로 삼겠다는 예술가들의 이주도 한몫했다. 그래서 제주 귀촌가구주의 절반 이상(2100가구)이 활동력을 지닌 40대 이하라는 점은 주목된다. 이주 예술가들은 제주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제주문화예술재단이 2013년 발표한 '문화예술가의 제주 이주 현황 조사'를 보면 응답자들은 소득 수준이 낮고 예술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낮음에도 이주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에게 제주 이주를 권유하겠다는 응답 비율도 높았다. 다만, 사회관계에 대한 만족도와 제주 생활에 대한 만족도 사이에 연관이 있었다. 마음 넉넉해지는 사회관계를 맺을 때 이주 역시 만족스럽다는 태도가 드러났다. 이주민들이 제주에서 오랫동안 터잡고 활동해온 예술가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신뢰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제주살이의 영속성이 가늠될지 모른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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