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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일본을 말하다
[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4부. 시마바라반도를 가다 (1)운젠 지질공원
재앙 아닌 축복으로… 불 뿜는 화산과 ‘공생’을 꿈꾸다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5. 05.11. 00:00:00
잿빛 바위 사이로 희뿌연 증기가 솟구쳤다. 땅 위에선 온천수가 펄펄 끓으며 거친 숨을 토했다. 매캐하게 올라오는 유황 냄새는 사방으로 퍼져 갔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일본 시마바라(島原) 반도의 '운젠 지옥' 풍경이다. 풀 한 포기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 그러나 사람들은 화산과의 공생을 말한다.

▶자연재해 재앙을 혜택으로=운젠 지옥이 생긴 배경에는 대규모 화산 폭발의 역사가 있다. 운젠시를 비롯해 시마바라시, 미나미시마바리시 등 3곳으로 이뤄진 나가사키현 시마바라반도는 약 430만 년 전 해저화산의 분화로 형성됐다. 이후에도 수차례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430만년 전부터 수차례 대규모 화산 폭발
1990년 후겐다케 분화로 지역 경제 침체
독특한 지형·온천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


1990년에는 운젠 화산을 대표하는 후겐다케(普賢岳·1359m)가 용암을 내뿜었다. 약 5년 동안 지속된 분화로 형성된 거대한 용암돔은 무너져 내렸고, 고온의 용암괴와 화산재, 화산가스가 합쳐진 화쇄류로 돌변해 시마바라시를 덮쳤다. 화쇄류 발생 횟수가 9000여회에 달했다. 44명이 숨졌고, 2200억엔(한화 약 2조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대참사였다. 이 분화로 후겐다케 위로 헤이세이신잔(平成新山·1483m)이 새롭게 솟았다.

화산 폭발은 '재앙'이었다. 후겐다케의 분화는 시마바라반도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인구는 감소했고 관광객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2009년 숙박객 수(172만명)는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한 1990년(363만명)의 절반 수준을 밑돈다.

그러나 지금도 약 15만명의 사람들이 화산과 함께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운젠 지옥도 재앙이 남긴 흔적의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재해를 극복한 혜택으로 받아들인다. 화산폭발이 남긴 독특한 지형과 온천 등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며 삶을 잇고 있는 것이다.

운젠다케 재해기념관(가마다스 돔)에 전시돼 있는 화산쇄설류의 길. 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화산쇄설류에 의해 쓰러진 나무들은 화산 폭발 당시 광경을 짐작하게 한다(왼쪽). 시마바라반도 대표적 온천마을인 운젠시 전경(오른쪽).

1934년 일본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한 운젠시는 시마바라반도의 대표적인 온천마을이다. 운젠 가이드 설퍼 대표 사사키 마사히사씨는 "운젠 지옥에는 운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관광객들은 온천을 잇는 산책로를 걷거나 뜨거운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먹으면서 색다른 '지옥'과 마주한다. 인간과 화산의 공생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시마바라반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운젠 지오파크의 의미=화산 폭발이 남긴 유산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09년부터다. 시마바라반도가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던 해다. 운젠 화산을 중심으로 반도 전역에 걸쳐 있어 '운젠 지오파크(운젠 지질공원)'로 불린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후쿠오카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

사실 이보다 전부터 자연재해로 침체된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은 있어 왔다. 나가사키현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시마바라지역 재생행동계획'을 추진했다. 행정 기관과 주민들은 주택과 농지를 재건하고 화산 폭발로 피해를 입은 건물을 보전·활용하면서 지역 전체의 재생을 꾀했다. 계획 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러한 일은 지속됐다. 화산체험 학습시설인 운젠다케 재해기념관(가마다스 돔)도 이때 만들어졌다. 세계지질공원 등재도 이 연장선에 있다.

시마바라반도와 일본 정부, 나가사키현은 지오파크 추진연락협의회를 구성했다. 협의회는 2010년부터 10년 간 추진되는 '시마바라반도지오파크 기본계획'을 뼈대로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질 자원을 활용한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지질 관광)이 체계를 갖췄고, 지오파크의 의미를 전달하는 가이드도 양성되고 있다.

후겐다케 남서쪽 산자락 해발 680m 고지에 위치한 '운젠 지옥'. 운젠지옥 주변에는 2km 정도 길이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관광객들은 산책로를 걷거나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먹으며 색다른 '지옥'과 마주한다. 강경민기자

▶시마바라반도와 제주=시마바라반도는 2년 전부터 제주와의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세계지질공원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2010년 10월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시마바라반도 지오파크협의회 사무국의 오오노 마레카즈 박사는 "시마바라반도와 제주는 거리 상 가까운데다가 일본과 한국 최초의 지질공원"이라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됐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민간 차원의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지질공원의 보전과 관리, 활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제주를 찾은 시마바라반도 지오파크 협의회 후루카와 류자보로 회장은 "제주는 지역주민이 실제로 참여하는 지오팜, 지오하우스와 같은 지질관광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앞으로 시마바라반도에서도 이러한 지역밀착형 상품 등을 개발하고, 제주 세계지질공원과 협력해 지질관광 공동마케팅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마바라반도 관광연맹에 따르면 올해 안으로 시마바라반도 지오파크 가이드들이 제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지질공원의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시마바라반도에게 여전히 큰 과제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를 만드는 것이 지질공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고민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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