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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人터뷰]제주출신 이창휘 항일변호사 딸 이영자씨
"죽기 전에 비석이라도 찾았으면…"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5. 06.16. 00:00:00

독립운동가 이창휘 지사의 딸 이영자 씨는 이 지사의 유일한 자손이다. 이씨는 "아버지가 잊히지 않게 살아 생전 비석이라도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강희만기자

독립운동가 무료 변론에다 농민 계몽에도 힘써
사후 60년간 제대로 조명 안돼… 공덕비도 사라져


올해로 아흔 살인 이영자씨는 수시로 눈시울을 붉혔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아버지에 대해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씨는 독립운동가 이창휘(1897~1934) 지사의 딸이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 출신인 이 지사는 항일변호사다.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조선총독부가 발령한 제3호 변호사가 됐다. 민족대학 출신이 변호사가 된 첫 사례다.

이 지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를 무료로 변호했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신간회 사건, 안창호 사건 등 굵직한 항일독립사건을 맡았다.

딸 이씨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 조대수 등 5명이 휘말렸던 무정부주의 사건이다. 외할아버지에게 어렴풋이 전해들은 정도이지만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변호사로서의 아버지 모습이다. 이 지사는 당시 법정에서 "살아 있는 생명을 짓밟으면 음지로 가서 싹이 돋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당신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민 계몽에도 힘썼다. 이 지사는 조선농민사를 결성하고 민중계몽을 위한 전국 순회 강연에 나섰다. 그러나 1934년 함경북도 웅기읍 강연은 그의 마지막이 됐다. 당시 나이 37세. 예고 없던 죽음을 놓고 일제에 의한 암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숨진 지 한참 뒤에야 조명됐다. 그것도 한 개인에 의해서다. 고산1리 원로회장이었던 고원준씨는 이 지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그의 삶을 되짚었다. 그 결과 이 지사는 1995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숨진 지 61년 만의 일이다.

이는 이 지사와 함께 활동했던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이인(초대 법무부장관), 허헌 등이 민족 변호사 3인으로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대교우회보 '모교를 빛낸 교우들(제9회)에는 이 지사에 대한 이런 글이 적혔다. "그가 만약 김병로나 이인처럼 조국 광복을 봤더라면 법조인으로 일각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씨가 아버지에 대해 알 게 된 것도 겨우 20년 전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저 아홉살 때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라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인지도 몰랐죠. 뒤늦게 고원준 씨가 모은 자료를 보며 알게 됐습니다. 그분은 어렸을 때부터 어르신들한테 아버지에 대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딸은 잊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찾기로 했다. 때마침 60여년 전 고산우체국 앞에서 봤던 비석이 떠올랐다. 1931년 고산우체국이 설립되는 데 힘을 보탰던 이 지사를 기리기 위해 마을에서 세운 공덕비였다. 이 지사는 1929년 고산포를 정기 여객선 기항지로 만들기도 한 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우체국 자리에 길이 나고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비석이 사라졌어요. 살아 생전 소원이 그 비석 하나 찾는 겁니다. 제가 죽더라도 아버지가 잊히지 않게 남겨두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지사는 생전에 2남 1녀를 뒀다. 이씨는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유일한 자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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