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들을 정리 시가 쓰인 시대상을 통해 시인의 예술혼 느껴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저자 고광석) 초여름 장마가 시작되는 수요일, 안개처럼 자욱한 비내림을 보면서 독서대담은 시작되었다. 여느 카페에서 맡아지듯 커피의 향내는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와 시 그리고 차를 두고 나눈 대화는 너무나 환상적인 만남의 자리였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이하'안')=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강봉조(서귀포시 남원읍 거주, 이하 '강')=저는 올해 2월에 귀농귀촌을 결심해 가족과 함께 서귀포시 남원에 정착하여 감귤밭을 경작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살면서 약 18년간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렇게 전원생활을 하면서 감귤밭을 경작하니 벌써 20대의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간 듯하고 열심히 농사일을 배워서 내년에는 더 큰 밭을 경작하고 싶습니다. ▶안=얼마전 기사를 보니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한국시집박물관에서 제1회 전국 소월시 낭송대회를 개최하였더군요.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발간 90주년을 기념한 행사였습니다. 아마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를 꼽자면 김춘수의 '꽃'과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혼'이 있는데요. 혹시 좋아하거나 암송하는 시가 있으신가요. ▶강=중학교 사춘기에 좋아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 유치환의 '행복', 조지훈의 '사모'등은 지금도 암송하고 있습니다. 한 때 문학소년을 꿈꾸기도 했습니다(웃음). ▶안=오늘 함께 얘기할 책이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이란 책인데 어떤 책인가요. ▶강=이 책을 읽으면서 중·고등학교 때에 암송한 시들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새로웠고 무엇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뎌져가는 제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한 권의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무려 15인의 시인과 깊은 대화를 한 듯 하였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있는데 제1부 시인의 사랑에서는 시와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시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2부 시인의 삶에서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고, 제3부는 시인의 신념인데 시인이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조국애 그리고 우리들이 평소 갈망하는 인간적 욕구를 너무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책에는 15인의 대표 시에 대한 내용이 있던데요. ▶강=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놀라움을 받았습니다.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인들을 분석하였고 대표 시와 시의 배경을 포함하여 각 시인들이 어떻게 그런 시를 노래하였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고 가장 좋았던 것은 독자들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을 가미하여 재미를 더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책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손에 들었지만 너무 흥미로워서 단숨에 다 읽게 되었습니다. ▶안= 평소에 궁금함이 있었는데요. 시와 시인은 어떤 관계일까요. ▶강=시란 시인을 닮아 있고 결국 시인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을 통해서 시를 이해하고 삶의 흔적들을 알게 됨으로 시가 갖고 있는 일차적 이해와 서정성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감동과 시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안=그렇다면 시인의 사랑에는 어떤 시들이 소개되나요. ▶강=처음에 소개되는 분은 시인 백석입니다. 솔직히 처음 들어본 분이었죠. 그런데 그의 시와 그 배경을 읽어보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2005년 시 전문 잡지 '시인세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인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집으로 백석의 시집 '사슴'이 1위를 차지했더군요. 그런데 이런 분을 아직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법정스님의 성북동 길상사의 시작이 결국 백석과 한 여인의 시정(詩情)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깊은 인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안=백석은 어떤 분인가요. ▶강=백석은 그의 호이며 본명은 백기행입니다. 백석은 오산학교의 선배 김소월을 선망했고 문학과 영어에 소질이 있어 일본의 명문 청산학원으로 유학을 하였고 전공인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조선일보를 거쳐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 즉 김영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과 정한을 안고 만주로 간 그는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를 발표하는데 이 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요. 그 밖에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한하운, 애절한 사랑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여류시인 홍랑,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 매화꽃보다 아름다운 시를 쓴 여류시인 계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같은 남자여서 그런지 백석 시인의 시와 그 배경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강='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안=천상병 시인의 귀천이군요. 그럼 천상병 시인은 어떤 분인가요. ▶강=시인의 삶에서 천상병 시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단의 3대 기인이라면 '대한민국 김관식'이라고 적은 명함을 가진 김관식, 허무를 견디지 못해서 바닷물에 빠져 죽으려고 제주행 배에 몸을 실었던 고은, 그리고 천상병 시인을 말합니다. 그는 1930년 일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마산중학교 5학년(지금의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교사인 김춘수 시인에게 시를 배우게 됩니다. 이후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1951년 서울대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시인이면 그만이지 학력이 무슨 소용이냐"라며 4학년 2학기에 자퇴를 하게 됩니다. 천상병 시인은 1985년 지인의 도움으로 인사동 골목에 '귀천'이란 찻집을 열게 됩니다. 물론 이 이름은 1970년에 쓴 시 '귀천'을 동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스물아홉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서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는데요. ▶강='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부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시인이라면 자신의 감성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텐데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고뇌를 시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안=사람들이 시를 멀게 느끼는데 어떤가요. ▶강=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시는 언제든지 우리 마음에 있고, 가까운 삶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요. 더군다나 제주에서는 정말 어렵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제주가 우리 속에 있으니까요. 다만 그 자연을 통해서 시인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안=앞으로 계획은 어떤가요. ▶강=저는 감귤 농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땀 흘리는 일을 해보고 싶었지요. 비록 힘은 들지만 감귤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수확한 감귤을 아는 분들에게 보내 보니 수확의 기쁨도 그렇고 함께 나누는 마음이 '이런게 사람 사는 맛이구나!'하였지요. 잠시 농부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록 제가 전업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야겠다고 생각되네요.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