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한란(寒蘭). 누군가 농익은 향기를 풀어내는 제주 한란을 두고 '국화 옆에서'란 시에 나오는 중년 여인이 떠오른다고 했다. 1967년 7월 18일은 '제주의 한란'이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된 날이다. 제주 한란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전에 종 자체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2002년에는 서귀포시 상효동 자생지까지 천연기념물로 이름을 올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금까지 많은 예산을 들여 제주 한란을 보호해오고 있지만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한란 보존 정책은 제자리인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서귀포시가 제주한란전시관 육묘장을 만든다며 도순동의 어느 난농원에 자재만 갖다놓고 거짓 준공처리했던 일을 접한 뒤 도내 애란인들을 만나 한란 정책의 문제점을 보고 들으면서 느낀 점이다. 제주시 해안동의 정수진씨. 40년 넘게 제주 한란과 벗해온 그의 난실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주인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졌다. 지난해 11월 제주한란전시관 개관 당시 그가 수집하고 정리해온 한란 관련 자료 중 상당수가 전시실 내부를 꾸미는 일에 쓰였다고 알려졌다. 그는 제주 한란에 마지막 열정을 바칠 생각으로 지난 4일 창립한 제주한란보존회의 초대회장을 맡았다. 내도동에 거주하는 38년 경력의 애란인 이철련씨. 제주의 향란회, 서울란회, 광주한란회가 공동 주최해 2001년, 2003년, 2005년 3회까지 지역을 순회하며 치렀던 대한민국한란대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사람이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에겐 한란대전의 명맥이 끊긴 일이 못내 아쉬울 듯 싶었다. 회원수가 4분의 1로 줄었지만 내년엔 수년 동안 중단됐던 향란회 전시를 다시 열 계획이라고 했다. 단단한 철책을 두른 자생지에서 자라는 문화재만이 아니라 애란인들의 난실에서 번식해온 한란의 가치도 눈여겨봐야 한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난원을 조성하는 등 한란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개인의 노력이 있었지만 행정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되레 제주 한란을 키운다고 하면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정도다. 일찍이 한란 종 자체를 문화재로 묶어놓은 정책을 재고해 제주도외 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애란인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던 일이 여러차례다. 제주의 대표적 애란인 모임인 향란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정수진씨와 이철련씨는 공동으로 '제주한란도감'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틈날 때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7년 '계림난만회'가 펴낸 한란 자료집 사본을 들여다보며 제주 한란 계통을 살펴온 이씨는 "제주 한란을 키워온 사람들의 흔적을 자그만 자료집에라도 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향란회가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명명했던 105종의 제주 한란 중에서 절반 이상은 소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기록 작업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보였다. 제주도는 이달부터 1년 기간으로 '제주 한란 보존관리와 활용 방안의 효율성에 대한 연구' 용역을 벌이고 있다. 도내 한란 재배 현황, 소득사업과의 연계성, 한란의 대중적 수요 충족에 대한 방안 등을 다룰 예정인데 더 늦기 전에 제주 한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진선희 제2사회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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