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독서대담/책과 함께 커가는 제주]'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자연주의자의 눈에 비친 동물들의 감동적인 삶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5. 08.28. 00:00:00

안재홍(왼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과 제주시 조천읍 와흘로 이주해 온 박소희(오른쪽)씨가 톰슨 시튼의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책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야생동물들의 장·단점, 자연에서 공존하는 밑바탕
저자 시튼의 작품들은 동물들의 감정에 초점 맞춰"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야생 세계에 관한 한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꾼 시튼이 쓴 최초의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이야기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단순한 동물 이야기를 넘어서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탁월한 생태 묘사와 야생 동물에 대한 애틋한 애정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글들이 담겨 있는 책으로 백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고전이다. 자연속에서 극적인 삶을 살아간 야생 동물들의 감동적이고 슬픈 삶이 자연주의자 시튼의 눈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큰 피해를 걱정했던 태풍 고니가 무사히 지나간 제주는 청정 그 자체였다. 태풍이 지나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고려가요와 동음어라서 그럴까 항상 그 이름을 들을 때면 아련한 옛 추억의 아스라함이 밀려온다. 그런 일순간의 감상을 뒤로 하고 찾아간 그녀의 사무실에서 흥미로운 책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재홍(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부위원장. 이하'안')=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박소희(제주시 조천읍 와흘 주민, 이하'박')=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제주에 내려와 와흘에 살고 있는 초짜 입도조입니다. 제주에 내려온 특별한 계기는 없고요. 영화 '시간의 춤'에 홀려 쿠바에 여행 갔다가 모국어가 있는 남쪽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행했고요!

▶안= 제주에서 살아보니 어떤가요.

▶박= 제가 사는 곳이 중산간이라 도시에서는 부족함으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이에요. 여기선 '부족'에 대해 따로 변명할 필요가 없어요. 당연한 거니까요. 야생동물처럼 자연의 냉혹과 고독에 점점 길들여지나 봐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에 살아 그런지 좀 더 순응하는 법도 배운 것 같고. 그리고 도시에는 없는 지독한 심심함도 있어요. 외로움과는 다른 성질인데. 많은 작가들이 심심함을 소재로 왜 그렇게 많은 글을 썼는지 이제 이해가 가요. 첫 주인집 아주머니가 개라도 한 마리 키우길 권했는데, 제가 심심해서 죽을까봐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안= 그럼 현재 반려동물이 있나요.

▶박= 아니요 없어요. 전 동물을 키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호감은 갖고 있어요.

▶안= 마침 오늘 주제가 동물인데요. 책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박=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얼마전 만난 들고양이들 때문이에요. 5마리인데 가엾게도 어미가 없었어요. 애교도 넘치고, 장난기도 많아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 가장 귀여웠던 노랑이는 개에 물려 죽었고, 애정을 가장 많이 쏟은 흰발이는 애꾸눈이 되었어요. 모두 사고였는데 자연은 잔혹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자유를 대가로 위험한 야생에 두어야 하는 게 맞는지, 안전을 대가로 안락한 방에서 야생을 거세하고 살게 하는 게 맞는지. 딜레마였죠.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가운데 여우의 눈물 편을 읽으며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것 같아요.

▶안= 이 책은 무척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다시 펼치게 되었어요. 여우의 모성애가 짙게 담긴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박= 새끼 여우가 인간에게 잡혀 쇠사슬에 묶인 신세가 됩니다. 어미 빅슨은 밤마다 찾아와 제 새끼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매번 실패해요. 결국 빅슨은 자신을 잡기 위해 인간이 묻혀 놓은 독 묻은 먹이를 새끼에게 갖다 줘요. 쇠사슬의 길이만큼만 허락된 새끼 여우의 구차스러운 삶을 어미 스스로 마감시켜버린 거죠.

▶안= 작가가 무척 유명한 분이시죠. 시튼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톰슨 시튼인데 원래 화가였다고 들었어요.

▶박= 네. 어려서부터 대자연에 관심이 많아 박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의 뜻에 화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그림도 시튼이 그렸죠. 영국 태생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6살 때 캐나다로 이주했는데, 캐나다의 원시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잔혹한 아름다움이란 자연의 이중성에 매혹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시간은 사람을 잘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공간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변화시키잖아요. 시튼은 서른여덟이 되던 1898년에 '내가 아는 야생동물' 등 방대한 동물기를 잇달아 내 놓으며 세계적인 동물 문학가가 되었습니다.

▶안= 단순히 동물 문학가로 머물지 않았다고 하던대요.

▶박= 시튼은 죽을때까지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글을 쓰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시튼은 동물에게도 느낌과 소망이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 믿음이 이런 우화 같은 동물기를 쓸 수 있는 동력이었겠죠. 실제로 시튼이 들려주는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를 들으면 때론 인간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삶에 치열하며, 위대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안= 1900년부터 급진적인 환경보호주의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걸까요?

▶박= 동물들의 슬픈 눈과 마주친 적 있는 사람은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죠. 시튼은 오랫동안 동물들을 관찰해왔고,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들을 만났겠죠.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있겠어요.

▶안= 우리가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파브르 곤충기와 시튼 동물기입니다. 파브르와 시튼이 가진 생명에 대한 생각은 어떤건가요.

▶박= 그분들은 자연은 사람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사람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죠. 이런 생각 때문에 환경운동도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을 거예요. 시튼의 작품에서는 보다 동물들의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야생동물의 삶이 모두 비극적으로 끝나잖아요.

▶안=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 시튼의 작품이 이미 사실적 동물 문학이라고 정의되어 있더라고요.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는 늑대 로보, 은점박이 까마귀, 갈래귀 토끼, 시튼의 친구 빙고, 여우 가족 등 8개의 이야기 속에 사랑, 조직, 우정, 모성 등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이 뒤엉켜 있어요. 이 모든 이야기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고요.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동물의 언어를 시튼만큼 잘 알지 못하니까요. 시튼도 조바심에 이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라 연거푸 말하곤 하는데, 사실이라면 동물언어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번역서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슬프고 아름다운 우화인 셈이죠. 얼마나 집요하게 관찰했는지 까마귀들의 악보까지 들어있어요. 집 앞에 까마귀가 많은데, 이 책이 까마귀 언어의 사전이 됐죠. 차렷이라고 말하는 건가? 이건 위험하다는 신호구나. 이렇게요.

▶안=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박= 사람에게 붙잡히고도 블랑카(로보의 아내)를 잃은 비애에 젖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늑대 로보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빙고가 마지막 숨통을 자신의 원래 주인인 시튼의 집 앞에까지 질질 끌고 와 죽어 있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죽은 새끼들 옆에 몸을 쭉 뻗고는 젖을 먹이고,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던 여우 빅슨(여우의 눈물 편의 여우 가족 엄마)의 모성애가 가장 잔상이 많이 남았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어요.

"모든 동물들에게는 각자 큰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또 그들은 나름대로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래야만 다른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 추천하고 싶은 생태도서가 있으신가요.

▶박= 아,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같은 책을 생태도서라고 하나요? 그렇다면 저는 생태도서를 많이 읽지 않아 추천해드릴 수가 없네요. 대신 최근에 읽은 책을 추천한다면 카페 림보요. 김한민 작가의 그래픽 노블(소설과 결합한 형태의 만화)인데,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 굉장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예요.

▶안= 마지막으로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박= 우리 집 앞에 사는 까마귀요. 이 책에 나온 악보대로 노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동물서커스 조련하시는 분들도요(웃음).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